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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철 선생 

 
   






← 화산에서 3기생 북한 선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최윤철 선생
 
  최윤철 선생은 2기생 이용섭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나가 학생으로 데리고 왔다. 북한에 있을 때 운동선수였다. 체육인이어서인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어떤 일이든 마음만 먹고 덤벼들면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의욕에 충만해 있었다. 성경 통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윤철 형제는 성경 공부 역시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성경을 본 적도 없었던 탈북자들이 성경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신앙적인 삶에 대해서 경험도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 몇 시간의 기도와 성경 읽기, 말씀 암송, 각종 선교사 훈련을 감내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가난하고 두려운 삶이지만 이제까지의 탈북자의 삶은 자유로운 삶이었다. 그러나 통독장의 하루는 아침 6시부터 깨어나 단 1분도 쉴 겨를도 잡생각 할 사이도 없이 오직 기도와 통독과 말씀 암송과 과제 수행의 연속이었다.

사역장에 들어오기 전에 몸에 깊이 배인 산만하고 무절제한 삶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경 통독 훈련은 자기 마음을 바꾸는 훈련이었다. 북한의 운동선수들이 받았던 강도 높은 훈련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시작했던 윤철 형제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고통을 만났다. 운동선수의 훈련은 몸과의 싸움이었지만 사역장의 훈련은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북한에서 받았던 훈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혈기 왕성한 육신은 오히려 이 훈련에 있어서 더 큰 장애물만 되었다.

북한 형제들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군대 생활하던 것보다 10배는 더 힘듭니다.”
내가 용섭 선생 사역장에 갔을 때 윤철 형제가 말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 저 큰일났슴다! 어제부터 오줌을 싸는데 오줌 색이 빨갛지 않슴까? 그래서 내가 오줌 싸다 졸아서 잘못 봤다고 생각했슴다. 근데 그 다음 날도 또 오줌 색깔이 새빨개서 찬찬히 보니까 피가 섞여 나오는 거 있지 않슴까?”
용섭 선생과 나는 웃었다. 학생 때 대부분 한두 번씩 겪는 일이었다.
“이제 한두 달 정도 더 빨간 오줌을 누면 윤철 형제 훌륭한 선교사가 될 거예요.”
용섭 선생도 한마디 했다.
“그거 다 선교사가 돼 가는 과정이니까 걱정 말아라.”
윤철 형제는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설명해 주었다.
“요즘 많이 힘들죠?”
“아이고! 선교사님 그거 말이라고 함까? 이거 진짜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릴 데려다 놓구 살리자구 하는 건지, 피를 짜서 죽이자구 하는 짓인지 어떤 때는 진짜 삭깔려 죽겠슴다.”
“좀 힘들어서 그러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선생들 보고 물어 보세요! 여기 있는 선생님들도 학생 때 다 한두 번씩 피 오줌을 싸 보고 선생이 된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화산에서 순교자 김철수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 →
 
 
  당시 중국에서 핸드폰은 고가의 물건이었다. 삐삐도 완전히 보급되기 전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장만하기 힘들었다. 통화료도 너무 비쌌다. 탈북자들에게 핸드폰은 그저 멀리 서서 구경만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윤철 형제는 신기하게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꽤 최신 기종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신기해서 물었다
“핸드폰을 윤철 형제가 산 거예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삽니까? 중국에 돈이 많은 친척이 있슴다. 그래서 얻어 가졌슴다!”
“핸드폰 유지비는 어떻게 대나요?”
“내가 어떻게 이 비싼 전화를 합니까? 그저 들고 다닐 뿐임다.”
“쓰지도 못할 전화기를 뭣 하러 간직하고 있나요?”
윤철 형제가 힘들게 말했다.
“한국에 친척이 있습니다. 그 친척에게 전화를 했슴다 날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한국으로 가게 해 달라고 했더니 생각해 보자고 했슴다. 그래서 혹시 언제라도 전화가 오지 않겠나 해서 가지고 다닙니다.”
핸드폰은 윤철 형제에게 구원의 끈이었다. 그는 소중한 보물을 품듯이 핸드폰을 품속에 모시고 다녔다. 아무리 기다려도 한국에서 전화가 오지 않자 윤철 형제는 나에게 돈을 달라고 졸라서 자주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그때마다 그에게 들려오는 말은 생각해 보자는 대답뿐이었다. 윤철 형제는 이 말을 기다리라는 말로 해석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남한 친척이 자기를 이 탈북자의 삶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남한 친척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를 기대했다. 가난한 탈북자에게 는 동정해 주는 친척은 있을 수 있지만, 거액의 돈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는 친척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 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

1년 정도 지나서야 윤철 형제는 한국 친척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났는지 더 이상 나에게 한국에 전화할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윤철 형제도 힘든 사역장의 훈련을 다 견디어 내고 화산에 올라가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 화산에서 3기생 선생들과 함께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고 사진을 찍은 최윤철 선생
 
  우리 사역장들이 서안에서 체포될 때 윤철 선생도 함께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모든 북한 선생들과 형제들이 자기들의 앞길을 걱정할 때 그는 사역장에 두고 온 핸드폰을 걱정했다. 아깝다고……. 친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고가의 물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으로 끌려간 후 윤철 선생은 다시 우리와 연결되지 않았다. 북한으로 끌려간 형제들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해 보다가 윤철 선생은 정치범 수용소나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 까지는 확인했지만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북한 어디엔가 살아 있다면 이제는 핸드폰과 한국 친척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유일한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붙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윤철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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