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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바울 선생 

 
   
최바울 선생은 함경북도 무산 사람이다. 탈북하여 우리 사역장으로 올 때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2기생 박다윗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학생을 모집해 왔지만 그 속에 북한 보위부 특무가 섞여 들어오는 바람에 곧바로 해산되었다. 그 후 다시 올라가 학생들을 모집할 때 바울 선생을 만나 데리고 왔다. 그러다 보니 다윗 선생은 다른 3기 팀들보다 몇 달 늦게 사역을 시작했다.
 
  바울 선생은 다윗 선생으로부터 우리 사역장에 가면 한국 선교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잘하면 한국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우리 사역장을 찾아왔다.
 
  그러나 바울 선생이 서안에서 나를 만나 보니 나는 한국으로 보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배와 라이터가 있으면 다 꺼내놓으라고 했다. 다 꺼내 놓았더니 빼앗아 가면서 이렇게 선포했다.
“이제부터 술과 담배는 금지합니다!”
바울 선생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뭐하는 사람인데 술도 못 먹게 하고 담배도 못 피게 해?”
나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성경책 한 권을 그에게 주었다.

다윗 선생의 사역장이 해산되면서 바울 선생은 김성근 선생 사역장으로 왔다. 성근 선생 사역장 북한 형제들이 이미 성경을 60독 이상 읽었을 때였다. 그때 바울 선생은 성경을 몇 독하지 못한 상태여서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다른 형제들은 큐티 시간에 열심히 질문하고 토의했지만 바울 선생은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재미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지만 갈 곳이 없어 억지로 성경을 읽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계속 성경을 읽었다.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그냥 하염없이 계속 읽어야 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들, 이해도 되지 않는 말들, 관심에도 없는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읽자니 죽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바울 선생은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서 천정만 올려다보면서 지냈다.

어느 날 새벽 바울 선생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광채가 나는 옷을 입은 분이 손을 내밀면서 웃고 있었다. 처음 듣는 따뜻한 음성, 처음 보는 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만 벌리고 바라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 성근 선생에게 설명했더니 성근 선생이 자기가 꿈을 꾼 것처럼 기뻐했다.
“바울 선생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 바울 선생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지겹고 싫어서 죽을 것 같던 성경이 갑자기 재미있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시는 부분을 통독할 때면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 내용이 통독을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씀은 그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기도가 신이 났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성근 선생의 눈을 피해서 도둑잠만 자던 바울 선생은 그때부터 스스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 가장 무서운 분을 보았다. 동시에 가장 따뜻한 분을 보았다. 먹어도, 잠을 자도, 앉으나 서나 그의 입에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는 말이 멈추지 않았다. 바울 선생은 그렇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울 선생의 기도는 평범했지만 힘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모호하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울리는 힘이 있었다. 새벽과 저녁 기도 시간 바울 선생이 대표기도를 할 때면 졸던 형제들도 귀를 기울이고 들었고 그의 기도에 빨려 들어가 함께 아멘 아멘으로 응대했다.

그에게서 서서히 기도의 능력이 자라기 시작했다. 표정훈 목사님이 오셔서 은사 집회를 하는 날 바울 선생은 또 한 번 신비한 체험을 했다. 격한 감정으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고 기도하던 바울 선생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펄쩍펄쩍 뛰면서 고함을 질렀다.
"내 손에 뭔가가 들어오고 있어.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 전기선에 닿은 것 같아. 나 좀 살려 줘!"
다들 어쩔 바를 몰라했다. 표정훈 목사님이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해 보시더니 말씀해 주셨다.
"바울 선생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다 멍해졌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신유’가 무슨 말인지 몰라 바울 선생도 주변 형제들도 그저 덤덤하게 듣기만 했다.

그리고 바울 선생도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 화산 정봉으로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
 

↗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후 김성근 선생 팀 형제들이
다 함께 찍은 사진
 
 
  바울 선생은 이용섭 선생이 연길에서 서안으로 내려보낸 10명의 학생들을 인계받아 정식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바울 선생은 자꾸만 울었다. 설교를 하면서도 울었고 기도하면서도 울었다. 왜 자꾸 우냐고 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는데 그게 마음에 와 닿으니까 자꾸만 눈물이 나와……. 나도 어쩔 수 없어……."
바울 선생이 평소에 하는 모든 말이 다 설교였다. 바울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고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바울 선생은 사역을 오래 하지 못했다. 2001년 6월 11일 서안 사역장 전원이 체포되던 날 바울 선생도 학생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북한으로 북송되던 날 바울 선생은 절망했다. 이제 북한으로 끌려가면 가혹한 고문 끝에 비참한 죽음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만 남았다.

바울 선생은 자기들을 호송하는 중국 변방 군인들에게 부탁했다.
"우리가 온성군 교두에서 북한쪽 세관으로 넘어갈 때 중국 땅을 넘어서는 순간 기관총으로 우리를 사형시켜 주시오. 그것이 당신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중국 군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린 너희를 죽이지 않는다. 너희 살게 되면 다시 중국으로 들어와라.”

온성군 보위부에 도착하자 보위부 지도원들이 우리 형제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종자들이다! 1등 총살감들이다. 너희는 살 생각들을 하지 마라."
바울 선생도 매일매일 선생들과 학생들과 함께 끌려 나가 고문을 당했다. 선생들은 심문하지 않고 고문만 했다. 가죽 띠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구둣발로 차고 밟았다. 바울 선생이 고통스러워 고함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자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 남조선 새끼들처럼 말하는 거 봐라.”
“이제는 중국말도 막 나오네. 이 개새끼가 여기가 중국 땅인 줄 아나? 장군님 계신 너 조국 땅이다.”
하루 종일 꼬박 매를 맞았다. 딱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아픈 자리 또 맞고 또 맞고 하니 너무 많이 맞아 감각이 없어져 아프지도 않았다. 서안에서 팀장을 했던 사람들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것이 북한 보위부의 정책이었다.

고문이 끝나고 감방으로 돌아오면 고문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있었다. 앞과 옆으로 줄을 반듯하게 맞추어서 요가를 하는 사람처럼 정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눈만 움직일 수 있었다. 머리라도 조금 움직이면 창살 앞에서 감시하던 군인이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야! 너 12번 앞으로 나와! 손 내밀어!”
보위부 감옥에서 바울 선생은 12번이었다. 살이 떨렸다. 발발 떨면서 밥그릇을 밀어 넣는 구멍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군인은 총신을 청소할 때 사용하는 강철 쇠줄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너무 아파서 머릿속이 다 하얘졌다. 으악 하고 고함을 지르면 고함을 질렀다고 다시 때렸다. 조금 지나면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요 새끼 부었네.”
재미있다고 또 때렸다. 때리면서 물었다.
“아픈가?”
눈물 뚝뚝 흘리면서 아프다고 하면 아프다고 했다고 또 때렸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기합을 주었다. 기합의 종류는 다양했다. 거꾸로 서서 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기합은 정말 힘들었다. 몇 분만 지나면 온 몸의 피가 머리로 몰려 눈이 빠질 것 같았고 고통으로 머리통이 울렸다. 한 발을 들고 몇 시간 서 있기, 앉았다 일어섰다를 몇백 번씩 반복하기 등 수많은 기합들이 있었다.

기합을 받지 않으려고 정자세로 하루 종일 앉아 있다 보면 처음에는 엉덩이뼈부터 아프기 시작한다. 고통은 점차 허리로 올라온다. 그 후 온 몸이 고통으로 마비된다. 그래도 움직이면 안 된다. 돌부처처럼 정면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밥은 하루에 세 끼를 주었다. 그냥 멀건 옥수수 가루 죽이었다. 말을 들어 보니 옥수수 국수를 며칠 동안 불렸다가 푹 끓이기에 다 퍼져 버려서 가루를 풀어 놓은 것처럼 되었다고 했다. 숟가락도 손잡이는 떼고 동그란 부분만 주었다. 죄인들이 손잡이 부분을 끊어서 삼켜 자살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형제들이 눈을 감고 기도한다는 것을 눈치채자 보위부 군인들이 명령했다.
"이제부터는 앉아서 눈을 감지 마라. 눈 감는 자들은 기도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무조건 기합을 받을 것이다."
바울 선생은 눈을 뜨고 기도했다.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이 무서운 고통을 이길 것 같지 못했다.
"하나님 너무 아픕니다. 너무 힘듭니다."
하나님은 바울 선생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갑자기 온 몸의 고통이 안개가 사라지듯이 사라졌다.

학생들은 감방 안에서도 사역장에서 쓰던 대로 선생님, 형제님 하고 부르다가 이것 때문에 더 심하게 매를 맞았다. 선생들은 서로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순교하자고 각오했으니까 이대로 죽자.”

어느 날 감방 문이 철커덕 열리면서 군인이 소리쳤다.
“야 12번 나오라”
바울 선생이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면 또 얻어맞는다.
"또 고문당하겠구나……."
바울 선생은 잔뜩 긴장해서 고문실로 갔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고문실이 아니라 보위부 지도원실로 데리고 갔다.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른 때와 달리 보위부 지도원은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문을 꼭 닫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너를 한 대도 때리지 않을 테니 편히 앉아라."
“감사합니다.”
바울 선생이 편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 지도원이 물었다.
“야 편안하냐?”
“네, 편합니다.”
“야 아프지?”
“네.”
바울 선생은 조그맣게 말했다. 무순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고 불안했다. 보위 지도원은 책상 서랍에서 성경책 하나를 꺼냈다. 바울 선생은 북한에서 그것도 보위부 감옥에서 성경을 본다는 것이 신기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보위부 지도원은 성경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물었다.
“야 나는 이거 통 모르겠더라. 니는 이거 아나?”
“네, 압니다.”
“내 하나 물어 보자.”
“네, 물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에서 쌀을 막 무더기로 내려보내 줬다는 게 사실이가?”
“지도원 동지 하나님이 쌀을 내려보내 준 게 아니고 만나라는 게 있는데 그걸 내려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서 너무 배가 고파하고 행군하기 힘들어하니까 하나님이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그게 뭐이가?”
“성경책에 나오는데 읽어 보시면 이해가 갈 겁니다.”
“야 그거 알게 되면 니보고 물어 보겠나. 그건 됐고 예수가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고친다는 것이 정말이가?"
"네."
"그래? 그럼 너도 예수 제자니까 그래 할 수 있겠다?“
“네. 병자 있으면 보위지도원 동지 허락하신다면 기도해서 고쳐 드리겠습니다.”
“내 딸이 앓는데…….”
말을 하던 지도원이 아무래도 불안한지 끊고 말을 바꾸었다. 이런 대화를 하다가 들키면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으흠 됐다. 그거 그만두고. 야 그럼 예수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세상에 병원이라는 것이 없어도 되겠다?"
그는 비웃고 있었다. 바울 선생의 마음은 어느새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아무리 멋있게 말을 한다고 해도 보위부 지도원 동지는 이해 못 합니다."
보위 지도원이 다시 말했다.
"너 기도 한번 해 봐라."
순간 바울 선생의 마음속에서는 무엇인가 터질 것 같은 것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고문을 당해 아프던 몸이 순간 어디로 갔는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바울 선생은 보위부 지도원을 위해서 기도했다.
"하나님 참말로 좋으신 하나님. 가장 비천한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바울 선생은 보위부 지도원을 축복해 달라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알아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만!"
보위부 지도원이 기도를 중지시켰다. 밖에서 누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보위부 지도원이 들어와서 몇 가지 물어 보고 나가자 바울 선생에게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찬송가를 한번 불러 봐라. 밖에서 듣지 못하게 살랑살랑 해 봐라."
바울 선생은 찬송가 27장을 불렀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고문실 안에 바울 선생의 찬양이 조용히 울렸다. 바울 선생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이 위로 올라가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듣던 지도원이 중단시키면서 말했다.
“야 니 눈물이 저절로 나오네. 됐다 노래 그만 불러라 누가 듣겠다. 이제부터는 너를 고문 안 할게. 때리지도 않을게. 그리고 내일이면 너희들 안전부(경찰서)로 옮겨 간다."

서안에서 선생으로 세워졌던 선생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바울 선생은 제외되어 안전부로 이관되었다. 안전원들에게 사람들을 인계할 때 지도원이 특별히 당부했다.
"쟤는 때리지 마라. 한 대로 때리지 마라."
바울 선생은 눈물이 왈칵 났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는 것도 감사했지만 안전부로 가서는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바울 선생은 안전부에 3일간 구류되었다가 노동단련대로 갔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하면 석방될 수 있다. 보위부 지도원의 힘은 이곳에까지 따라왔다. 바울 선생은 고된 노동에서 면제되어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북한의 노동단련대는 영양실조에 걸려 죽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식당에서 일한다는 것은 지옥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병이 없던 사람도 노동단련대에 들어갔다 나오면 시들시들해지는데 바울 선생은 그곳에서 건강을 회복하여 탈출했다. 노동단련대에서 탈출했다가 잡히면 곧바로 감옥으로 가야 한다.

바울 선생은 집으로 가지 않고 그 길로 중국으로 탈북했다. 불빛 한 점 없는 산과 들을 달리고 또 달려도 이상하게 돌멩이에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고 나무에도 걸리지 않았다. 중국의 한 농가에서 밥을 얻어먹고 옷도 얻어 입고 왕청현 배초구로 갔다. 그곳에는 몇 년 전에 탈북해 중국인과 함께 사는 어머니가 있었다. 바울 선생은 곧바로 한국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바울 선생에게 한국으로 데려올 테니 안전하게 잘 숨어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때부터 바울 선생에게서는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에게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는 2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던 할머니가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다. 왠지 바울 선생의 마음속에서는 기도하면 그 할머니가 일어설 수 있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울 선생은 그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대부분 서안 사역장에서 훈련할 때 받았던 방언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던 날 아침 할머니가 온 몸을 떨면서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가 일어나고 바울 선생이 뒤로 자빠졌다. 마음속의 확신과 믿음이 정작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나자 자신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꿈꾸는 듯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바울 선생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걸 누가 믿어. 이걸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기 시작했다. 머리통이 울리는 사람, 이유 없이 식사를 못하고 시름시름 앓던 사람, 크고 작은 병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병을 고쳤다. 바울 선생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병이 나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꼭 교회로 나가서 신도가 되었다.

2002년 나는 바울 선생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바울 선생은 대구에 집을 받고 정착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결혼식과 아이 돌잔치 때에도 어김없이 나를 초대해 기쁨을 나누었다.
 
       
 
 
최바울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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