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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 선생 

 
    이욱 선생은 중국 조선족 형제이다. 19살의 어린 나이로 우리 사역장에 성경을 통독하러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살아왔지만 삶을 비관하며 되는 대로 살지 않았다. 매사에 진지했고 성실했다.

2000년 여름부터 이욱 선생은 김성근 선생 사역장에 와서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신약 100독 이상 구약 10독 이상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사역 말기에는 말씀의 은사까지 받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가 해석하는 말씀은 언제나 의미가 명확했다. 그의 해석은 표준 해석으로 인정받아 사역장 형제들에게 참고 자료가 되었다. 또한 그의 설교는 언제나 사람의 귀를 당겨 갔고 마음을 열게 했다.
 
   



← 김성근 선생 팀 형제들이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후에 함께 찍은 사진

이욱 선생은 중국 조선족이었지만 성근 선생 팀 형제들과 함께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고 하나님 앞에서 북한 선교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그 후 이욱 선생은 연길에서 이용섭 선생이 보내준 10명의 북한 형제들을 인계받아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해서 대략 한 달 후 우리가 서안에서 체포될 때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7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차고 안에 밀어 넣고 밤새 심문하고 고문하고 구타하다 지쳐 버린 중국 군인들은 새벽이 되자 문 입구만 지키고 서 있었다. 새벽 6시가 되었다. 차고 안에 잡혀 있던 모든 북한 형제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주여 삼창을 목청껏 외치면서 기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새벽 6시는 모든 사역장에서 새벽 기도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온 밤을 얻어맞고 터져 늘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목청껏 주님을 외치며 기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군인들은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곤봉에 얻어맞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피가 터지고 살이 터졌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했다.

그때 이욱 선생도“감사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하고 부르짖으면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였다. 그때 그의 앞에 서 있던 한 군인이 그를 내리치려고 곤봉을 높이 쳐들었다. 이욱 선생은 그 곤봉을 바라보았지만 전혀 무섭지도 않았고 겁나지도 않았다. 이상한 평안을 느끼면서 그 군인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찬양을 했다. 그 군인은 갑자기 멈칫하더니 곤봉을 거두고 다른 형제에게로 가 버렸다. 찬양을 다 마치고 기도가 끝나자 그 군인이 다시 그를 찾아와서 물었다.
“너는 몽둥이가 무섭지 않니?”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강력해서 전혀 무섭지도 않았고 겁나지도 않았고 평안했다.”
이욱 선생이 이어 그 군인에게 말해 주었다.
“당신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함께할 때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욱 선생의 말을 들은 군인은 신기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북한 형제들과 함께 연변 도문 감옥으로 호송되어 간 이욱 선생은 그곳에서 22일간 감옥 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었다.

그 후부터 이욱 선생은 서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만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었던 이욱 선생은 연길 실로암교회에서 생활했다. 실로암교회는 개척교회이다 보니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욱 선생이 견디지 못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배고파요.”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한 탈북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15kg 정도 되는 쌀을 메고 들어왔다. 그 탈북자는 왕청현 배초구라는 곳에서부터 연길까지 80리 되는 길을 걸어서 왔다고 했다.
또 어떤 날은 영어 선생을 하고 있는 선배 한 사람이 예고도 없이 교회로 찾아왔다.
“이욱아!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네가 굶어서 배고파 할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왔다. 같이 가서 밥 먹자.”
이욱 선생은 걸음마다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그 후 청도로 내려와서 한족 신학교에서 3년간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 통역으로 섬기기도 했다.

2008년 중국 비자가 회복되어 북한 선교를 재개하려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이욱 선생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서안에서 공부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이욱 선생은 한국으로 들어와서 신학 공부를 하는 북한 선생들과 똑같은 고통을 호소했다.
“선생님 처음에는 성령 충만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신학교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성경은 배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신학만 배우다 보니, 식어져서 냉랭한 마음만 안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너무 힘듭니다. 말씀 충만한 신학생들을 양육하는 신학교를 세워서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나는 감동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도 오랫동안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욱 선생, 나와 함께 그 일을 해 봅시다. 한번 기도해 보세요."
나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욱 선생은 며칠 동안 기도하며 생각해 보더니 나와 함께 다시 탈북자 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이욱 선생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열방빛선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해 오고 있다.
 
 

↗ 2008년 두 번째 북한 탈북자 사역을 위해 중국으로 들어갔을 때
나와 함께 북한 형제들을 섬기던 이욱 선생
 
 
야베스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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