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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광 선생 사역장 

 
   






← 신소광 선생이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것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
 
  연변으로 파송되어 간 신소광 선생은 학생 모집을 하지 못했다. 연길 숙소에서 최순교 선생과 함께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두 선생이 체포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분의 북한 선생들은 소광 선생에 대해서 포기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에서 청년단 간부까지 했던 사람이 탈북했다가 잡혀가면 십중팔구 정치범 수용소가 아니면 감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북한 선생들을 독려하면서 순교 선생과 소광 선생이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몇 달 후 소광 선생이 돌아왔다. 모든 북한 선생들이 믿지 못했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돌아오자 어떤 선생들은 북한 보위부가 우리를 잡기 위해 역으로 파송한 간첩일 수 있다고 우리와 접촉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 소광 선생이 서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나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한 시 바삐 살아 돌아온 소광 선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연길에서 학생 모집을 하던 이용섭 선생이 소광 선생에게 9명의 학생들을 맡겨서 서안으로 보냈다. 나는 모든 북한 선생들을 다 데리고 서안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소광 선생은 몇 달 간 북한 감옥에서 온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소광 선생은 마중 나온 우리들을 보고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펑펑 울었다. 나도 소광 선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죽은 자도 살리시는데 아무렴 우리 소광 선생 살려 주지 않으면 누구를 살려 주냐고……. 하나님이 우리 소광 선생 다시 살려 주셨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도 펑펑 울었고 북한 선생들도 울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소광 선생이 진짜로 살아 돌아왔어……. 주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 주셨어……. 최순교 선생도 살려서 돌려 보내줄 거야.”
북한 선생들은 울면서 그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털어 버렸다. 우리가 서로 나누었던 진실한 눈물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연을 전해 주었고 이 느낌은 우리 모두의 영혼에 진실하게 파고들어 왔다.

마침 서안에 김의환 총장님이 들어오셔서 우리 사역장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김 총장님은 북한으로 잡혀갔던 소광 선생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도 한번 만나보자. 빨리 데려오세요.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가 갑시다!”
소광 선생은 총장님께 감옥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다 간증했다. 총장님은 북한의 반기독교 상황에 대한 소광 선생의 생생한 간증을 다 들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만 말씀했다.
“정말 용케 살아왔다, 앞으로 주님의 일꾼으로 더 다듬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소광 선생은 서안 시내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집을 잡고 의욕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샀다. 책걸상부터 시작해서 가재도구, 노트, 연필 심지어 지우개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서 사역을 시작했다.

사역을 시작한 지 며칠 후 소광 선생은 놀라운 체험을 했다. 자기가 학생으로 들어와 순교 선생을 고생시켰던 모든 일들을 학생들이 옆에서 눈으로 본 것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신기해하다가 선배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은 그저 성경에 기록된 글이 아니라 실생활에 그대로 나타나는 진리였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정확하게 심은 대로 다시 드러났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모든 돈을 다 회수했지만 밖에 일 보러 나갔다 들어오게 되면 언제나 사역장 안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담배 냄새 때문에 코를 막아야만 했다. 밥상에는 먹다 남은 술병이 뒹굴어 다녔고 먹고 씻지 않은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이 좀 있는 사람은 힘이 세다고 어리고 약한 친구들을 구타해 어린 친구들은 펑펑 울고 있었다.
 
   





←북한 형제들과 함께 놀이 공원에서 놀면서 사진을 찍은
신소광 선생
 
  소광 선생은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 나누면서 달래고 바로잡아 주면서 사역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사역을 얼마 지속하지 못하고 우리가 서안에서 체포될 때 다 함께 체포되었다.

훗날 한국에 온 후 소광 선생은 잡혀간 학생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한 형제들이 사역장에 들어온 일 때문에 북한으로 끌려가서 너무 많은 고생들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사역장에 들어왔던 일들을 후회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억과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고 많이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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