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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화 선생 

 처음 1기 사역을 시작하고 길림에서 몇 달 간 공부를 하던 우리는 제남으로 이사했다. 이때 함께 공부하던 중국인 조선족 강길호 선생이 독립적인 사역을 하고 싶어 우리와 헤어졌다. 우리는 중국인 조선족의 도움이 없이 제남시로 이사 갔다. 우리 중에는 중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어를 모르고 가이드도 없는 한 무리의 이방인들이 중국 대도시의 한 복판에서 살아야 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중국인 조선족 선생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고 함께 성경을 배우고 싶어하는 중국인 선생을 찾는 다는 것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북한 선생들은 이 문제로 인해 주님께 많은 기도를 드렸다.

제남에 도착한 얼마 후 주광호 선생이 전관화 선생을 데리고 우리 사역 장으로 왔다. 우리 형편을 알고 주광호 선생이 일부러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연변까지 가서 사람을 찾아 데리고 온 것이다. 북한 선생들을 도와주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중국인이라고 하더라도 벌금을 물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관화 선생도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우리는 그를 전요셉 선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요셉 선생은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요셉 선생은 연변 조선족 자치구 개산툰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개산툰은 중국과 북한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국경의 작은 조선족 시골 마을이다. 요셉 선생의 아버지는 그곳 교회의 총()집사님이셨다. 한국의 교회처럼 장로 체제가 없는 곳이라 총 집사는 한국 교회의 장로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직책이었다.  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국경을 넘어오는 많은 탈북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분이었다. 굶주린 탈북자들이 넘어오면 우선 배불리 먹여주고 그들의 남루한 옷을 벗기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자기 집에 숨겨 주었다. 그렇게 몇 명 모이게 되면 주광호 선생에게 연락했다. 주광호 선생이 그들을 인도해 중국의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한국 선교사님들이 있는 사역 장들로 인도했다. 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북한 사역의 보이지 않는 큰 일군이었다.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한국 선교사님들이 요셉 선생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 무슨 상처를 받은 것이 있는지 요셉 선생은 한국 선교사들을 너무 싫어했다. 선교사님이 온다면 문을 잠가 놓고 기다렸다가 밖에서 쫓아버렸다. 이 때문에 아버님이 참 많이 속상해 했다. 속이 상한 집사님이 주광호 선생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하자 주광호 선생은 제남 시에 있는 우리 사역 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사님은 아들을 우리 사역 장으로 보내서 녀석이 하나님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언변 좋은 주광호 선생은 전요셉 선생을 구슬렸다. 얼리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했다가 말을 듣지 않자 일단 한 달 동안 여행 삼아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돌아와도 좋다고 하고 데리고 왔다. 당장 조선족 선생이 없어 위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또 우리 사역 장으로 데리고 오면 그 험하고 거친 북한 선생들도 변화되는데 요셉 선생도 충분히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주광호 선생의 말을 들으면서 요셉 선생 일은 주님께 맡기기로 하고 내버려 두었다.

     
아랫줄 왼쪽 두번째  사람이 전요셉 선생이다.  소림사로 유람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전요셉 선생과 순교자 박요한 선생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요셉 선생은 북한 선생들과 쉽게 잘 어울렸다.



   어려서부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을 건너다보면서 살았고 북한 탈북자들도 자주 만나면서 살다보니 전요셉 선생은 탈북자들을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다. 북한 선생들도 전요셉 선생에 대해서 중국 사람이라기 보다는 자기들과 같은 북한사람으로 허물없이 대했다.

    전요셉 선생은 축구를 잘했다. 연길 중학교를 다닐 때 학교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북한 선생들과 축구를 할 때면 제일 신나고 즐거워했다. 정주 대학교에서 축구를 할 때  우리가 하도 신나고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고 그곳 학생들이 팀을 갈라서 한번 시합을 해보자고 했다. 그때 그쪽에는 정주시 시립 축구단 프로 공격선수가 있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볼을 다루는 폼이 남 달랐다 하지만 악동들로 뭉친 우리 선생들이 이겼다. 그때 전요셉 선생이 정말 잘 했다. 대부분의 골을 전요셉 선생이 넣었다. 3대0으로 이겼다. 다들 월드컵에서 1등을 한 것처럼 기뻐서 날뛰었다. 

사역 장에 온 요셉 선생은 처음에는 그저 놀러 온 사람처럼 지냈다. 성경 통독도 그저 구경삼아 재미 삼아 해보았고 기도 시간에도 별로 진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셉 선생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기도시간마다 내가 통곡을 하면서 기도했고 북한 선생들도 통곡을 하고 울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통독과 사역장의 모든 일과에도 성실하게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손님이 아닌 이 사역장의 한 멤버라고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전요셉 선생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요셉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집에 안 가요?” 
“여기 잼있습니다. 선교사님” 
연변 사람 특유의 짧은 대답으로 요셉선생이 말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뭐가 그러게 잼있어요?” 
“통독시간이랑 기도할 때에 마치 천국 같습니다. 이번 1기 사역이 마무리 될 때까지 여기서 공부하면서 통역하는 일을 돕겠습니다. ” 
요셉 선생이 간다고 할까 봐 걱정을 했지만 주님이 그의 마음을 돌려 주셨다. 이렇게 해서 중국인 조선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요셉선생은 뒤늦게 우리 사역에 합류하였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도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꽤 많았기에 빨리 은혜를 받았고 회복하는 속도도 빨랐다. 특히 설교하는 능력이 빠르게 자랐다.

1기생 북한 선생들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활동할 때 전요셉 선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북한 형제들을 모집해서 사역하는 일은 못하겠지만 1기 선생님들을 도와서 2기 사역도 돕겠다고 했다. 변화된 아들을 만나본 집사님은 대 만족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요셉 선생이 한국의 어떤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 못지않게 설교를 잘 하는 것을 보고는 너무 좋아 어쩔 바를 몰라 하셨다.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그때부터 우리 사역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1기생 선생들을 파송하고 나는 선생들에게 사역 비를 보내주지 못했다. 1기 선생들은 북한 형제들을 모집했지만 그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유지할 사역 비가 없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이 나섰다. 집사님은 그 작은 시골 동네에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돈을 빌렸다. 자기집에 있던 돈도 다 털어서 우리 선생들에게 2만원이라는 거금을 주었다. 그때 중국인 한 달 인권비가 500원 정도였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는 정말 큰 돈이었다. 그 후에도 사방으로 흩어져 활동하는 우리 선생들의 중간 연락처 역할도 해주셨다. 1기생 선생들은 전요셉 선생 아버님이 주신 돈으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북한 선교의 큰 장을 여는데 있어서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의 활약은 정말 컸다.

전요셉 선생은 그때 하나님께 헌신하였기에 지금은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았다. 얼마 전에 안부 전화를 해 근황을 물었더니 전요셉 선생이 말했다. 하나님이 정말 자기를 많이 축복해 줬다고 지금 대련에서 여행사를 하는데 돈을 정말 잘 벌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많이 행복했다. 

전관화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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