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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길 선생 

   


최원길 선생은 1기생 김권능 선생이 1999년 4월에 2기 학생 모집을 위해
연변으로 파송되었을 때 데려온 조선족 형제이다.

학생 모집에서 제일 힘든 문제가 함께 동역할 조선족 형제를 구하는 문제였다. 신분이 안정된 조선족들은 북한 형제들과 숨어 살면서 힘든 성경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북한 탈북자들과 함께 체포되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아 우리 사역장에 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 나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 최원길 선생)

 
  그러나 사역장에 조선족 형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집을 계약할 때에도 신분증이 있는 중국인이 있어야
하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도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우리 사역에는 1기부터 시작해서 4기까지 많은 조선족 형제들이 있었다. 조선족 형제들은 드러나지 않게 많은 일들을 감당했다. 하지만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았다. 그저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북한 형제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면서 그들을 섬겼다.

거기에다 사역장의 북한 형제들은 대개 단순했고 거칠었다. 조선족 형제들이 화가 나서 신고라도 하면 당장 잡혀갈
처지였지만 조선족 형제들을 무시하며 함부로 대했다. 심지어 성근 선생 같은 경우 함께 동역하는 조선족 선생을
두들겨 패서 쫓아 버렸다가 공안에 쫓겨 다니기도 했다. 조선족 형제들이 북한 형제들에게 순종하면서 성경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권능 선생은 북한 형제들은 다 모집했지만 함께 동역할 조선족 형제를 구하지 못해 남쪽 지역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조선족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탈북자가 선생이 되어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니 조선족 교회들에서도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고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조선족 전관화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가 사연을 알고 최원길 형제를 데리고 왔다. 원길 형제의 아버님은 연변
개산툰 조선족 교회에서 관화 선생 아버님의 뒤를 이어 총집사의 사역을 하시는 분이었다. 당시 원길 형제는 연길에서 해양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권능 선생을 도우려고 사역장에 들어왔다. 권능 선생이 한국 순교자의 이름을 가져와
최원초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권능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우리 가족과 함께 청성산에 가서 찍은 사진
(노란색 원 안에 최원초 선생)

 
  원초 형제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한 주일 동안 계속 통독만 하다 보면 누구나 다 밖으로 뛰어나가 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원초 형제는 밖에 나오는 날보다 혼자 방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평소에는 말이 없었지만 정작
말을 시작하면 손짓 발짓까지 다 해 가면서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정말 재미있었다.

원초 혐제는 성경 통독도 성실하게 했고 권능 선생의 사역도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었다. 다윗 선생이 귀신 들려
정말 사역이 힘들 때에도 말없이 옆에서 도와주었고, 장만식 아바이가 체포되고 강제 북송될 때에도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함께 해 주었다. 위험한 일에도 서슴없이 뛰어들어 도와주었다.

한번은 익두 선생과 권능 선생이 바울 선생의 사역장으로 갔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 두 선생은 신분증을 집에 두고 왔다고 둘러댔다. 공안은 권능 선생은 붙잡아 두고 익두 선생만 보내면서 권능 선생의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익두 선생이 원초 형제에게 사연을 설명하자 원초 형제는 서슴없이 자기 신분증을 주었다. 원초 형제의 신분증 사진을 보니 기가 막히게도 권능 선생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해서 권능 선생이 위기를 모면하고 공안국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 김의환 총장님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최원초 선생)
 

  권능 선생 사역장 북한 형제들이 선생으로 임명받는 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다. 원초 선생도 설교를
했다. 그때 시편 126편으로 설교를 했는데, 정말 예상 밖으로 잘했다.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 커서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원초 선생이 앞으로 주님 안에서 큰 일꾼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많이 격려해 주었다.

권능 선생 팀이 파송되면서 원초 선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원초 선생은 개산툰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깜짝 놀랐다. 원초 선생의 아버님은 아예 충격을 받았다. 정말 웬만한 한국에서 오는 선교사님들보다
훨씬 더 잘했던 것이다.

당시 개산툰 조선족 교회는 정규 훈련을 받은 목회자가 없었다. 그래서 총집사님이 장로의 역할도 목회자의 역할도
다 도맡아야 했다. 주일이면 총집사님이 설교를 해야 했지만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설교 사역을 정말 힘들어하셨다. 그러다 아들이 1년 사이에 유능한 설교자가 되어 온 것을 보고 당장 짐을 싸들고 나를 찾아왔다.

자기는 통독 훈련장에서 훈련받게 해 주고 자기 아내는 우리 집에서 통역 일을 도와주면서 살고, 아들인 원초 선생은 계속해서 권능 선생의 사역을 돕게 해 달라고 했다. 외로웠던 우리 가족들에게 원초 선생의 어머니가 오셔서 식구가
하나 더 늘자 아이들과 아내가 많이 좋아했다.

나는 원초 선생의 아버님을 김권위 선생 사역장에서 공부하게 했다. 원초 선생 아버님은 약 3개월 정도 통독을 하셨다.

 
 

이상락 목사님이 오셨을 때 →
권능 선생과 함께 목사님을 안내하면서    
진시황릉 입구에서 찍은 사진    
(제일 왼쪽 최원초 선생)    

원초 선생 아버님은 권위 선생 사역장에서 통독하시면서 여러 가지 심부름도
해 주셨다. 약 3개월 정도 하시더니 두 손 두 발 다 들고 못 하겠다고 했다.
원초 선생이 다듬어진 결과만 보면 정말 화려했지만 그 과정은 고행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함께 공부하는 북한 형제들을 보니 너무 답답하고 한심했던
것이다. 나보고 그랬다.
“선교사님 뭔가 될 사람들을 데리고 훈련을 해야지, 도대체 이런 놈들이 되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럴 만도 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자기도 힘들어 쩔쩔매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들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거칠고 사나운 탈북자들을 다듬어서 선교사로 만든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숟가락으로 산을 파겠다고 덤비는 일이라고 했다. 역정을 내면서 다시 연변으로 올라가셨다. 그래도 함께 있는 동안
원초 선생의 가족들은 우리 사역에 이모저모 많은 도움을 주었다.

훗날 순교 선생 팀이 파송되면서 연변으로 뒤따라 올라갔을 때 그곳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다. 원초 선생은 연변에서 그 선교사님을 도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선교사님은 원초 선생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했다.
정말 훌륭하다고, 정말 흔치 않게 성경도 잘 알고 아주 잘 준비된 일꾼이라고 했다.

그 선교사님을 통해서 다시 원초 선생과 그 아버님을 만났다. 아버님은 반갑게 만나 주시면서 그때 화를 내고 올라온 것을 몹시 미안해하시며 용서를 빌었다.

몇 년 후 원초 선생은 한국으로 와서 고신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서울 시흥동에서 열방빛교회를 개척했을 때 와서
인사도 하고 설교도 했다. 지금은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대림동에서 중국인 사역을 하는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원길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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