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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빈 선생 

 
    유칼빈 형제는 북한 청진 사람이다. 청진에서 관광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의 자녀들이 접근하기 힘든 학교 중의 하나이다. 주변에서 가정환경에 대해서 궁금해서 물으면 어머니가 교사였다는 정도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칼빈 형제는 탈북한 지 3일 만에 유기풍 선생을 만나 우리 사역장에 들어왔다. 중국에 대해서도 신앙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사역장에 들어오다 보니 많이 불안해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고 마음속을 열어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갓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때가 묻지 않았기에 북한 탈북자답지 않게 외모가
단정했고 언행도 거칠지 않고 예의가 있었다. 조금만 지내 봐도 수준 있는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빈 형제는 공부를 잘했지만, 기풍 선생과 함께 베트남으로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신앙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기풍 선생 팀이
해산되고 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온 후부터 진지하게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익두 선생이 어떤 일을을 하라고 하면 군말 없이 다 했다. 다른 형제들은 뒤에서 화를 내기도 하고 불평을 하면서 안 한다고 뻗대기도 했지만, 칼빈 형제는 힘들어는 해도 그저 시키는 대로 잘 했다. 다른 형제들과 부딪히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익두 선생이 그를 많이 칭찬했다.

보통 탈북자들은 김일성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갈등과 의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혼란을 경험한다. 대개 외향적인 북한 형제들은 내면의 고충을 거친 싸움이나 논쟁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칼빈 선생은 표현하지 않았다. 실망하거나 혼란스러울 때에도 담담했고, 감동했을 때에도 담담하게 그저 웃기만 했다.

가끔씩 익두 선생 팀 형제들은 비디오방으로 가서 한국 영화를 보았다. 칼빈 형제가 영화로 만난 남조선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북한에서 배우고 들었던 나라가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은 흥분해서 밤새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남조선에 대해서 나누었지만, 칼빈 형제는 그저 담담히 앉아서 혼자 생각하기만 했다.

 
 

↗ 익두 선생 팀과 우리 가족이 도강언에서 보트 타고 놀면서 함께 찍은 사진
(노란색 선 안에 유칼빈 선생)

 
  칼빈 형제의 변화된 모습은 어느 날 슬그머니 나타났다. 김예진 형제가 김성근 형제에게 성경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질문할 때 칼빈 형제가 끼어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잘 표현하지 않아 신앙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논리적인 설명은 그가 하나님을 깊이 믿고 있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때에야 다른 형제들은
칼빈 형제가 어느새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했다는 것을 알고 다들 신기해했다.

 
 






김의환 총장님께 세례를 받는 유칼빈 선생 →
 

 
  칼빈 선생은 익두 선생 밑에서 신약 100독 이상 구약 성경 10독 이상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설교하는 훈련과 사역장을 인도하는 훈련을 비롯해 많은 훈련을 이수하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칼빈 선생은 파송을 앞두고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편지를 보냈다.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기도 속에서 매일 매일 교제 교통하던 장로님께 오늘 또 다시 편지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뜻 받들어 어린 양들을 돌보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저는 최광 선생님의 지도 밑에 중국에서 공부하는 칼빈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날마다 다듬어 나가고 있습니다. 장로님과 성도님들의 끊임없는 중보기도 속에 우리는 주님의 참 사랑을 맛보며 근심 걱정 다 잊고 주님의 말씀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독 101독을 하였습니다. 참 진리 되신 말씀 속에서 나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 년 전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님을 이름조차 모르던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불러 주시고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는 이 사명의 길에 내세워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뜨거워 옴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구원된 이 기쁨에 도취되지 않고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과 평강을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알려 주며 그들과 함께 주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곧 파송입니다. 불쌍한 내 동포를 구원하고 그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심어 주는 사역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세상 권세 잡은 자들과 온갖 핍박과 감시를 피해 가며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엄혹한 현실을 생각하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속에서 힘을 얻고 담대하게 주님의 생명 되는 이 말씀을 전파하렵니다.

세상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명자의 본분을 다 할 수 있게 중보기도 하여 주십시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 어미 닭의 품에서 근심 걱정 없이 자라고 있는 우리 어린 병아리들이 세상 속에서도 사도 바울처럼 담대히 그 어떤 환난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게 우리에게 힘을 주십시오. 이제껏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 장로님과 성도님들 앞으로도 더 많은 중보기도 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아침과 저녁으로 장로님과 성도님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분열된 조국에서 산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사랑 속에서 서로가 교제, 교통하게 된 것만 하여도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우리는 조국의 복음화 통일을 위하여 한 알의 밀알로 썩을 수 있게 마음을 다잡아 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 힘 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서로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갑시다. 복음화 통일될 그 날을 그리며 타양 멀리 중국에서 편지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3월 5일 칼빈 드림

 
  익두 선생 팀이 파송되어 나가는 날 칼빈 선생이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선교사님 제가 중국에 들어올 때 저의 어머니가 많이 앓고 있었습니다. 집에 식량도 없었고 약도 없어  제가 
 중국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 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이제 파송되면 학생 모집보다는 먼저 북한에 있는 집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칼빈 선생은 다들 북한 선교 한다고 각오하고 있는데 자기만 집안 문제로 걱정하는 것을 몹시 미안해했다.
“선교사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괭이를 지고 뒤돌아보는 자는 내게 필요 없다고 하신 말씀을 잘 압니다.
 하지만 난 정말 어머니 생각이 나서 못 견디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갔다가 바로 되돌아오겠습니다.
 돌아와서 학생들을 모집해서 다른 선생들 못지않게 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괜찮아요. 집에 무사히 갔다 오세요. 우리 잠깐 기도합시다.”
나는 칼빈 선생과 함게 손잡고 기도했다. 국경을 무사히 넘어 집으로 갔다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칼빈 선생은 어머니 때문에 잡히면 죽을 수도 있는 길을 떠나야 한다.

익두 선생 팀을 떠나보내고, 북한까지 나갔다 돌아와야 하는 칼빈 선생이 많이 걱정되어 기도했다. 칼빈 선생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두만강을 넘어가다 잡혔는지, 무사히 집까지는 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잘못되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유칼빈 선생은 오늘날까지도 북한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서 그때 중국에서 만났던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들어갈 때 다시 만나 우리와 함께 동역할 숨은 하나님의 씨앗으로 먼저 보내신 사람이다.
 

 

↗ 이순홍 목사님과 나와 허익두 선생 팀 형제들이 도강언에서 함께 찍은 사진
(제일 오른쪽 유칼빈 선생)
 
 
유칼빈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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