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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식 선생 

 
    홍만식 선생은 북한 청진 사람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늘 홍범도 장군의 손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김일성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한 사람이 아니라서 북한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청진 제철소 정광직장에서 보일러공으로 일을 했다. 공장에서는 월급도 양식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출근해야만 했다. 3일 이상 출근하지 않으면 감옥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만식 선생은 공장에 들어오는 석탄을 훔치기 시작했다.
석탄을 훔쳐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90년대의
그 무서운 식량난을 버티어 나갔다. 보일러에 석탄이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북한의 모든 탄광에 양식이 공급되지 않으니 탄부들이 석탄을 캐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장의 보일러가 가동을
멈추었고 만식 선생이 훔칠 석탄도 없어졌다. 먹을 것이 떨어진 만식 선생은 이번에는 폐기된 전기 설비에 손을 댔다. 변압기와 전동기들을 해체해 구리선들을 빼내서 팔았다. 그것마저도 다 떨어지자 결국 가동되는 전기 설비들까지
뜯어서 팔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고 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들키고 말았다.

당시 북한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장 설비들을 떼어내서 팔아먹자 잡히는 사람들을 공개 총살하기 시작했다.
전 사회적인 공포심을 형성해서 배가 고파 미쳐 날뛰는 군중들을 장악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만식 선생은 안전부에
잡혀가면 무조건 처형당한다는 것을 알고 그 길로 중국으로 도망 나왔다. 그 후부터는 아내와 자식들과도 헤어져야만 했다.

중국으로 탈북했지만 만식 선생을 갈 곳이 없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다행히 허익두 선생을 만나 우리
사역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학교 때에도 공부를 별로 즐겨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성경 공부와 훈련을 몹시 힘들어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기도 시간에 코를 골면서 자고 통독 시간에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토요일마다 하는 운동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활기 있고 명랑한 시간은 식사 시간뿐이었다. 만식 선생은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애를 썼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늘 못마땅해했다. 그러다가 내가 한국에서 가져오는 약 중에서 소화제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소화제를 먹어 가면서 밥을 먹었다. 통독 시간에도 집중하지 않고, 기도 시간에도 자고,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매일 밥을 산만큼 먹어 대더니, 결국 한 달이 지나자 만식 선생은 앞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임산부 배가 되어 버렸다.

만식 선생이 자기 배를 만지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에는 노동당 간부들만 이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이제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함께 살던 북한 형제들은 배가 나왔다고 늘 놀려 주었지만 만식 선생은 배가 나온 것을 눈물 나게 기뻐했고 늘
형제들에게 자랑했다.
“이런 배 북한에서 본 적 있어! 중앙당 간부들도 이렇게 못 됐어. 그런데 내가 됐단 말이야. 김정일이 배보다 내 배가
 더 클 거야.”

만식 선생은 사역장에서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살았다. 먹을 때만이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고 했다.

 
   






← 나의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서 놀고 있는
    허익두 선생 팀 북한 형제들
    (노란색 선 안에 홍만식 선생)

 
  익두 선생도 만식 선생에 대해서 힘들어했다. 도대체 성경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니
만식 선생에 대해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북한 형제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벌이면
만식 선생은 늘 옆에 덤덤히 앉아 있다가 부엌으로 나갔다. 한참 있다가 뒤따라 나가 보면 맛있는 죽을 끓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야 인마! 조금만 기다려. 죽이라는 건 푹 익히고 푹 퍼져야 맛있단 말이야. 조금만 기다렸다가 먹어.”
그리고 기다렸다 나와서 보면 자기가 먹을 죽이 없었다. 사람이 성격이 순하고 넉넉했기에 어린 형제들이 함부로
달려들어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죽을 한 가마씩 끓여 놓았다. 그래야 자기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함께 공부하던 북한 형제들도 만식 선생의 순하고 너그러운 성품은 좋아했지만 그 외 다른
신앙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았다.

익두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장기 금식에 들어갔다. 1주일에서 많게는 10일씩 작정하고 금식을 시작했지만 아무도
만식 선생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도저히 금식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식 선생이 불쑥 말했다.
“나도 금식합니다.”
갑자기 왁작거리며 떠들던 사역장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익두 선생도 가만히 앉아서 만식 선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린 홍충신, 김사무엘 형제들이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만식 선생님은 하루에 세 끼만 먹어두 금식입니다.”
익두 선생이 물었다.
“며칠 하려구요?”
“한 주일은 해 보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분위기 때문에 덩달아 한 말인 줄 알았다.

금식 기간 내내 어린 형제들이 장난치면서 물었다.
“홍만식 선생 배 안 고파?”
“안 고파.”
“밥 해 줄까?”
“안 먹어. 너나 먹어.”
만식 선생은 했다. 김성근 선생은 10일 한다고 장담하고는 7일밖에 못했지만 만식 선생은 성실하게 끝까지 다 했다.
금식 기간이 끝나자 만삭된 임산부 배 같았던 만식 선생의 배가 훌쭉해졌다. 늘어났던 뱃가죽이 할머니 배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어린 형제들이 할머니 배라고 만지면서 놀렸다.

 
   

← 우리 가족들과 허익두 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함께
    도강언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노란색 선 안에 홍만식 선생)
 
만식 선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함께 석탄을 도둑질하고 전기
설비들을 도둑질하던 친구들은 지금 감옥에 가고 어떤 친구들은 처형당해 죽었는데, 자기는 이렇게 배불리 먹고 편안하다고
미안해했다. 며칠이 지나더니 우리 민족은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하는지, 왜 우리는 이런 무서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괴로워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그 해답을 성경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왜 하나님이 남조선은 돈을 많이 주고 우리는 먹을 것도
 안 주냐고.”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도 이렇게
물으면서 울면서 기도했다. 만식 선생은 자기 주변의 모든
상황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새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고, 그 감각은 만식 선생을 울게 했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데려가고 있었다.

 
 
김의환 총장님께서 허익두 선생 사역장에 오셨을 때 홍만식 선생은 세례를 받았다.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 선생들을 파송하던 날 홍만식 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파송을 좀 보류해 주십시오.”
내가 이유를 묻자 만식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직 선생으로 서기에는 부족한 것도 많고 저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습니다. 선생이 어떻게 담배를 피우면서
 학생들을 가르칩니까?”
북한 사람들은 정직의 가치에 대해서 잘 모른다. 특히 생계를 위해 도적질을 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거짓에 대해서 감각이 사라진다. 만식 선생은 오랫동안 파송을 기다렸지만 결국 담배를 끊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고 실토한 것이다. 나는 만식 선생은 김권위 선생 사역장에 보내 보충 학습을 하도록 했다. 변화된 그가 기뻤고 이 기쁨은 그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너나없이 다 하나같이 사랑에 굶주려 있다. 사랑은 해 본 사람이 더욱더 목마르게 된다. 만식 선생은
북한에 아내와 딸을 두고 왔기에 더욱더 사랑에 목말라했다. 만식 선생은 나의 어머니인 권사님을 늘 그리워했다. 우리 가족들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잠깐 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들러 함께 지내다 갔다. 그때 권사님의 따뜻한 위로와
동정의 말이 만식 선생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았던 것 같다. 그 후부터 만식 선생은 늘 권사님을 잊지 못해 했고 보고
싶어 했다. 권사님은 계속해서 김치를 담가 사역장에 공급해 주었다. 하루는 아내가 김치를 담가 보냈다. 곧바로 북한 형제들이 이렇게 말했다.
“김치 담그는 사람이 둘인가? 왜 김치 맛이 달라졌지?”
나는 권사님의 손이 북한 형제들 마음과 몸속에 깊고도 익숙하게 배여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메일이 발달한 한국인들은 자주 편지를 쓰고 메지지를 보내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만 북한 형제들은 좀처럼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감사해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만 있다가 그냥 만나면 씩 웃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와서 시시한 농담이나 한두 번 던지는 것으로 표현했지, 메시지나 편지를 쓰는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루는 만식 선생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혀를 위로 잔뜩 빼물고 땀까지 흘려 가면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썼다. 글자들을 보니 꼭 마치 유치원 아이가 멀리 떨어진 보고 싶은 엄마에게 보낸 편지 같았다.

 
 
       
 

 
  권사님에게 드립니다.

우리 민족의 복음 통일을 위하여 21세기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고 계시는 권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탈북자 2기반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학습하고 있는 홍만식입니다. 저의 사역장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은 5월 15일에 파송되었지만 저는 남아서 권위 선생 사역장에서 몇 달 더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하나님 말씀 구약 11독, 신약 110독을 하였습니다.

권사님, 권사님과 가족들과 상봉을 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1999년 8월, 11월 두 차례 상봉이 저의 마음에 영원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권사님과 사모님,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저를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당당한 복음의 전도자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권사님과 사모님께 우리 최광 선생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또 음식과 기온이 맞지 않는 데서 조국과 멀리 떠나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계시는 권사님과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99년 2월에 탈북하여 1999년 6월 4일에 주님을 영접하여 학습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저 우상숭배 속에서 빛도 없이 방황하며 살던 저를 이렇게 참다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권사님 저는 저 북한 땅에 어린 딸(5살)과 안해와 두 누이동생을 두고 제 혼자서 탈북하였습니다. 양 부모와 두 남동생은 1995~1996년 사이에 다 사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비극적인 가정은 저희 가정만 아니라 수많은 가정에서도 비참한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북한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사형에 처형되고 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과 또 탈북하여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이유 구실 없이 죽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우리 북한 탈북자들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진리를 모른 채 잡히기만 하면 죽음은 죽음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권사님 저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진정한 진리를 깨닫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권사님 늙으신 육체로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시느라고 우리 사역장 선생님들은 권사님의 건강과 사모님, 가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역장이 확장됨에 따라 우리 최광 선생님께서도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권사님, 사모님, 건강한 육체로 21세기 우리 북한 선교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서 많은 일과 성과를 희망하면서 펜을 놓겠습니다.

주 안에서 건강한 육체를 저희 사역장에서
상봉과 교제의 그날을 위하여
안녕히 계십시오.

                                                                                                                                                                                홍만식 올림

할렐루야!

권사님 편지에 글씨가 곱지 못하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편 119편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아멘

저희 사역장을 꼭 찾아오십시오.

 
  홍만식 선생은 권위 선생 팀이 파송될 때 그들과 함께 파송되어 연변으로 나갔다. 만식 선생은 김철수, 배소명, 이선장 등 7명의 형제들을 모집해서 서안으로 내려와 사역을 시작했다.

사역은 영적인 싸움이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북한 형제들을 안아 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 아픈 매질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성품이 모질지 못한 만식 선생은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계속 끌려 다녔다. 결국 사역은 흐지부지 되었고 선교사 훈련이 목적인 사역장은 구제 사역장처럼 되어 버렸다. 심지어 식사 때마다 맥주를 사서 먹기 시작했다. 내가 여러 번 경고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만식 선생을 팀장에서 해임하고 그 사역장에 성근 선생을 팀장으로 세웠다.

해임된 만식 선생은 권위 선생 사역장에 학생으로 보냈다. 의욕 있게 사역을 진행해 나가던 만식 선생은 완전히
낙담했다. 결국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사역장을 떠났다.

훗날 우리 선생들이 서안에서 다 체포되고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로 나갔을 때에 그곳에서 홍만식 선생을
만났다. 만식 선생은 열차에서 공안에 체포되어 잡혀 나와 있었다.


 
 

↗ 김의환 총장님이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왔을 때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는 홍만식 선생 (노란색 선 안)
홍만식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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