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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충민 선생 

 
    홍충민 형제는 북한에서 어렸을 때에 부모님을 잃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간 부모님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충민 형제는 길거리에서 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말하는 ‘꽃제비’가 된 것이다.

중국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탈북한 어린 충민 형제는 연길의 교회들을 돌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을 알게 되었고 선교사님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기 시작했다.
 
  선교사님들은 충민 형제의 눈물 나는 고단한 삶을 듣고 많이 사랑해 주었다. 대신에 엄격하지 못했다. 체계적으로 그를 데리고 살면서 그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인도해 줄 만한 선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충민 형제가 만난 선교사들은 대부분 단기 선교로 들어왔다가 떠나가는 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기 통제 능력이 약했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잠깐씩 성경을 배우면서 한글은 익혔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

충민 형제가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올 때 그의 나이는 18살이었다. 충민 형제는 탈북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강도 높은 우리 사역장의 훈련을 싫어했다. 결국 사역장에 들어온 지 1달 만에 사역장을 떠나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을 찾아 갔다. 하지만 그 선교사님은 충민 형제를 받아 주지 않았다. 충민 형제가 인생을 진지하게 살려면 훈련을 받아야 했고 공동체 생활을 익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돌아온 충민 형제는 자꾸만 익두 선생의 요구에 반항했고 사역장의 질서를 지키지 않았고 제멋대로 행동하려고 했다. 거기에다 선교사님들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성경에 대해서 대충 들은 것이 많아 그것을 가지고 익두 선생까지 가르치려고 했다.

성질 급한 익두 선생이 어린 충민 형제 때문에 힘들어했다. 충민 형제에게는 우리 사역장이 인생의 첫 공동체 생활이었고 같은 탈북자들과의 생활이었다. 충민 형제는 사역장에서 사람들과 충돌하고 부딪히면서 대인관계를 배우기 시작했고 예의를 갖추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충민 형제는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익두 선생과 형들이 못난 자기를 구박하고 욕을 많이 했지만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여태껏 자기가 받아 온 것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 주는 동정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역장에 마음을 붙이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충민 형제도 변하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태껏 그가 배운 성경은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칭찬을 듣고 돈을 받기 위한 성경 공부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았고 기도도 유창하게 잘 했지만 그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지식일 뿐이었다.

 
   






← 김의환 총장님이 허익두 선생 사역장에 오셨을 때
    설교하는 모습이다. 노란색 선 안에 있는 사람이
    홍충민 형제이다.

 
  충민 형제는 익두 선생 밑에서 성경을 100번 통독했다. 그리고 설교하는 훈련도 배웠다. 그리고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나서야 자기가 그동안 알고 있던 성경은 지식일 뿐이었고 지극히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충민 형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김의환 총장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 김의환 총장님께 세례받고 있는 홍충민 형제
 
  충민 형제는 익두 선생 팀이 파송되어 나갈 때 파송되지 못하고 원래 자기를 돌봐 주던 선교사님에게로 돌아갔다. 훗날 최광 목사님이 서안 사역장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북한 형제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때 충민 형제도 데리고 왔다.
 
홍충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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