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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선생 

 
    김영윤 형제는 김권능 선생 동생이다. 권능 선생이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연변의 깊은 시골 마을인 의란진 종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사람이 총명해서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생활 중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종이 뽑는 기술자로 일을 했다. 친척 중에 파출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보호받으면서 살았기에 월급도 매달 꼬박꼬박 받으면서 일반 중국인처럼 살았다. 이 때문에 여느 탈북자들처럼 생계 문제 때문에 교회를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회 전도사님이 가끔씩 찾아와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손을 저으면서 도망가 버렸다. 교회도 싫어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싫어했다. 권능 선생이 파송되어 학생 모집하러 나와서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영윤 형제는 곧바로 1기생 유기풍 선생 팀에 합류되어 우리 사역장으로 공부하러 들어왔다. 그때 그는 23살 청년이었다.
 
  연변에서 살 때에는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배고픈 것도 모르고 살던 사람이 사역장에 들어와서 참 고생 많이 했다. 기풍 선생과 함께 중경으로 갔지만 곧바로 사역비도 떨어지고 양식도 떨어졌다. 먹을 것이 없으니 논밭에 나가 우렁이를 잡아먹으면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다 기풍 선생이 한국으로 간다고 팀 전원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떠나자 영윤 형제가 제일 앞장섰다. 팀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풍 선생이 한국행에 실패하고 베트남에서 쫓겨 다시 돌아오자 나는 기풍 선생 팀을 해체시켰다. 그때 많은 형제들이 떠나갔지만 영윤 형제는 남아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나는 영윤 형제를 최바울 선생 팀으로 보냈다. 그때부터 영윤 형제는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했다. 바울 선생 팀에 와서는 양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자꾸만 쫓겨 다녀야만 했다. 계속해서 공안들에게 쫓겨 다니고 체포되기도 하면서 공부했다. 훈련도 힘들었지만 쫓겨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사역 환경이 안정되지 못하다 보니 바울 선생 팀 형제들은 다른 팀 형제들에 비해서 공부를 심도 있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것을 배웠다. 공부하다가도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보내 주시는 경고를 받고 도망을 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파출소에 연행되어 갔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이사로 자기들을 도와주어 빼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이들은 도망 다니면서 하나님을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팀 형제들보다 더 생동하게 배웠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사역 도중 공부를 포기하고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팀장인 바울 선생이 바로 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잘해 보자고 항의했다.

김영윤 형제는 바울 선생 팀에서 성경 100독 이상을 읽었고 모든 선교사 훈련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김의환 총장님이 오셨을 때 세례를 받았다.
 
 
 
 

↑ 세례받은 후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우리 가족과 함께 사진 찍은 바울 선생 팀 북한 선교사들
노란색 선 안에 있는 사람이 김영윤 형제이다.           →
 
 
  김영윤 선생은 바울 선생 팀에서 모든 훈련을 마치고 연변으로 파송되었다. 총명한데다 활동력이 강한 영윤 선생은 파송되자 손쉽게 산속에 숨어서 살고 있는 세 쌍의 탈북자 부부를 찾아 데리고 산동성 제남으로 내려와서 사역을 시작했다. 내가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만나 보니 의욕이 충만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여태껏 사역장에 여성들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체시킬 수는 없었다. 해체시켜 여자만으로 따로 사역장을 만들면 사방에서 자기 아내도 데려오겠다고 자기 동생 데려오겠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선교사 훈련 사역은 구제 사역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돌려보내면 남편들이 사역장에 있지 않겠다고 했다. 난처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사역을 진행하게 했다.
 
   







← 김영윤 선생이 모집해서 사역했던 북한 부부들
 
  영윤 선생은 사역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사역장에 공안이 덮쳤던 것이다. 다행히 잡히지 않았지만 공부하던 세 쌍의 부부들은 겁을 먹고 그 길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영윤 선생은 의욕을 상실했다. 그래도 연길로 올라가서 다시 팀을 모집해 오겠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부부들 말고 남자들만 데리고 오라고 다시 파송시켰다. 그 후 연락이 끊어졌다.

김영윤 선생은 훗날 한국으로 와서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한국에 정착을 잘 하고 애도 낳고 잘 살아가고 있다.
 
김영윤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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