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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광 선생 

 
    신소광 선생은 최순교 선생이 파송되어 나가서 데려온 선생이다. 나는 순교 선생이 학생들을 데리고 서안으로 내려왔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소광 선생은 북한에서 전문대를 나왔고 철도 공장에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탈북했다. 어떤 이유로 탈북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느 북한 탈북자들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 외모부터 말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단정했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를 보면서 잘 다듬어지면 정말 훌륭한 북한 선교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순교 선생이 사역장에서 학생들에게 술을 사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화가 났다. 순교 선생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이 컸기에 순교 선생을 위해 팀을 해산하기로 했다. 첫 사역부터 적당히 봐 주게 되면 앞으로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는 기본부터 바르게 잡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순교 선생 사역장에 가서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 짐을 싸서 연변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오늘부터 순교 선생은 팀장이 아닙니다.”
순교 선생은 책임감을 느끼고 말없이 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술 한 번 먹은 것이 이렇게 큰 죄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모두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나는 용서하지 않았다.

소광 선생이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소광 선생은 격한 감정을 가지고 구호를 부르고 떠들어 대지 않고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선교사님, 우리 북한 사람들은 악한 정권 밑에서 살아왔기에 책임자가 하는 모든 요구들을 잘 순종하지 않고 몰래 나쁜 짓을 하는 것이 큰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몰래 술 먹는 것이 이렇게 나쁜 짓이라는 것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잘 해 보겠습니다.”
나는 소광 선생의 말을 듣고서 한 걸음 물러서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소광 선생이 하는 작은 행동까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소광 선생은 나의 막내딸 명현이를 만날 때마다 특유의 그 침착성을 잃어버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좋아했다. 안고 물고 빨고 난리를 피웠다. 순교 선생이 말해 주었다. 북한에 두고 온 딸이 명현이 또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최순교 선생 팀 북한 선생들과 나의 가족들이 공원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신소광 선생이 나의 막내 딸 명현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소광 선생은 나와 한 약속을 지켰다. 훗날 최효선 형제가 술을 사 먹자고 또 다시 북한 형제들을 선동하고 나섰다. 그리고 술을 사 주지 않는다고 순교 선생을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그때 소광 선생이 막아 나서서 말렸다. 정말 험악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소광 선생 때문에 무난히 넘어갔다.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소광 선생은 마음 밭이 좋은 사람이었다. 빨리 은혜를 받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순교 선생의 인도 하에 소광 선생은 성경을 백 번 이상 읽었고 세례를 받고 북한 선교사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을 마쳤다.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는 날 소광 선생은 발언 시간에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이렇게 북한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교 선생님이 수없이 흘린 눈물의 대가입니다.”
모든 선생들이 그의 말에 동감했다. 특히 순교 선생은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면서 마음에 쌓였던 모든 응어리들이 그 말 한마디에 다 풀려 버린 것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최순교 선생 팀 북한 탈북자들이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후 나의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동그라미 안에 있는 사람이 신소광 선생이다. →
 
 
   





← 북한 선교사 임명 예배가 끝나고 우리 가족들이 다 돌아간 후 신소광 선생은 자기의 스승인 최순교 선생과 함께 다시 사진을 찍었다. 소광 선생은 북한 선교사가 된 것을 그렇게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소광 선생 때문에 큰 위험을 모면하는 일이 있었다. 순교 선생 팀이 파송되어 연변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나도 뒤따라 올라가 그들의 숙소를 찾아갔다. 그때 소광 선생이 나에게, 우리가 다 잡혀도 내가 잡히면 안 된다고, 서안에 있는 수십 명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쫓아내다시피 했다. 그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순교 선생 팀 숙소로 공안들이 들이닥쳤고 소광 선생은 순교 선생과 함께 북한으로 끌려 나갔다. 중국 공안의 목적은 처음부터 나였기에 나를 잡으려고 두 선생을 모질게 고문했다. 하지만 두 선생은 그 무서운 고문 속에서도 입을 다물었다.

모든 선생들이 순교 선생은 혹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미련을 가졌지만 소광 선생은 포기했다. 북한에서 청년 단체 간부로 활동하다가 탈북하였고 잡혀 갔기에 중죄인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 소광 선생은 늘 아름답고 큰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몇 달 후 소광 선생이 다시 돌아왔다. 연변에서 활동하는 이용섭 선생을 찾아왔다. 나는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아 너무 기뻤지만 북한 선생들은 당황해했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모든 북한 선생들이 그를 믿지 못했다. 북한 보위부가 우리를 잡기 위해 보낸 간첩이라고 의심했다. 그렇게 의심할 만했다. 잡혀가면 도저히 석방되어 나올 수 없는 사람이 기적적으로 석방되었고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감옥 안에서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석방되어 나왔는지는 졸저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선생들이 그를 좀 더 지켜보면서 우리와 격리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사람됨을 믿고 있었기에 의심 없이 그에게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고 다시 받아 주었다.

나는 소광 선생이 연변에서 학생들을 이끌고 서안으로 내려왔을 때 마중 나갔다. 소광 선생은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였다. 소광 선생도 울었고 나도 그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소광 선생과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물 하나로 참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소광 선생은 의욕적으로 사역장을 꾸려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서안에서 우리 전체가 체포될 때 그는 또 다시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 나갔다. 소광 선생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전번에는 그래도 일반 생계형 탈북자로 잡혀 나갔기에 용서받을 수 있었지만, 강제 노동 기간에 도망을 쳐서 다시 탈북한 데다 이번에는 기독교 사건으로 체포되어 나갔기에 더 이상 용서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소광 선생은 포기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북한 온성군 보위부로 형제들과 함께 끌려 나갔다.

철도 보위부에서 온성군 보위부에 수감되어 있는 소광 선생을 데리러 왔다. 그를 데리러 온 철도 보위부 호송 요원이 말했다
“신소광! 너는 끝장이다. 너는 살 생각 하지 마라.”
소광 선생은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온성 역으로 끌려갔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역전 안에 있던 군중들이 소광 선생을 구경했다. 소광 선생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당당했다. 수치스러움과 두려움은 없었다. 그는 머리를 들고 태연하게 호송 요원들을 따라다녔다.

고향에 도착했다. 평소 함께 일했던 사람들 앞에 죄인의 신분, 그것도 기독교인의 신분으로 나타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철도 공장 신소광이 잡혀 왔다. 기독교 사건으로 잡혀 왔다.”
소광 선생은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어떤 일에도 난 괜찮아. 마음은 든든해. 나는 여기서 끝날 거야. 내 생은 여기까지일 거야. 이제 정치범 수용소로 가겠지?’

조사가 시작되었다. 소광 선생은 그동안 중국에서 했던 모든 활동을 조서로 써야 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썼다. 며칠이 지나자 청진 철도 총국 보위부에서 전화가 왔다.
“신소광이 그 놈을 끌어 올려라. 당장 여기로 데리고 와라!”
청진 철도 총국 보위부는 북한에서 제일 높은 철도 보위부 기관 중의 하나이다. 이곳으로 불려 올라가는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 청진에 있는 수성 정치범 수용소 아니면 함흥에 있는 영광 정치범 수용소로 가게 된다.

북한 철도 기관에서 기독교 사건으로 잡혀 나온 것은 신소광 선생이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특별히 엄중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청진 총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역전으로 나왔다. 역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만난 것처럼 소광 선생을 구경하면서 웅성거렸다. 소광 선생도 기차를 타러 나온 평범한 사람마냥 사람들을 구경했다.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순간 둘러싼 사람들 무리 속에서 동창생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10년 동안 군사 복무를 하고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제대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박동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친구였고 어머니끼리도 서로 친구 사이였다. 이제 두 사람의 처지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 사람은 조선노동당원이고 10년 군사 복무를 마치고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왔고, 또 한 사람은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광 선생을 알아본 친구의 눈이 커졌다.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큰 장벽이 막혀 있었지만 우정은 이 벽을 허물었다. 친구는 거리낌 없이 소리쳤다.
“야 너 잡혀 나왔다며? 너 청진 가니? 건강해라. 제발 살아서 돌아와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이 한마디 말 때문에 친구는 당 생활총화에서 비판 대상이 되고 출세의 길에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소광 선생에게 우정과 격려를 표시했다. 그런 친구가 고마웠다. 친구를 위해서 많은 말을 하면 안 되기에 침묵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는 지금의 나를 모를 거야.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을 때는, 비록 네 앞에서 초라하고 너에게 동정받는 것 같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 장한 모습이었는지를 알게 될 거다. 친구야 고맙다.’
열차에 오르자 호송 요원이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은지 수갑을 찬 소광 선생의 손에 옷을 감아 보이지 않게 해 주었다. 친구는 열차까지 쫓아왔다. 창문 밖에서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살아 있는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었다.

기차는 5시간을 달려서 청진에 도착했다. 검은색 리무진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스포츠머리를 한 20대의 건강하고 잘생긴 보위부 특전대원 2명이 소광 선생을 인계받아 리무진 안에 태우고 양 옆에 앉았다.

청진 철도 보위부 구류장에 들어가니 20~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감방 안에 있었다. 소광 선생은 무서운 전염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마냥 그들과 접촉시키지 않고 독방에 넣었다. 이어 간수가 들어와 소광 선생의 옷을 모조리 벗겼다. 그 자리에서 옷에 붙어 있는 단추, 벨트, 고무줄을 다 뽑고 옷 솔기까지 다 뜯어 버렸다. 순식간에 멀쩡했던 옷이 너덜너덜한 수의가 되었다. 북한은 수의가 따로 없다. 입고 들어온 옷에 붙은 안전장치들을 다 떼어 버리면 그것이 수의가 된다. 옷을 몸에 고정시키는 아무런 장치도 없으니 헐렁해져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쥐고 다녀야 한다.
‘너는 마지막이야.’
소리 없는 음성이 마음속에 송곳처럼 찌르면서 들어왔다.

조사실에 들어가니 보위부 지도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급이 꽤 높은 50대의 노련한 간부였다. 정치 간첩으로 중국도 자주 다닌 사람이어서 중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보위부 간부는 성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첫 심문부터가 색달랐다.
“너 주기도문 한번 외워 봐라.”
암송했던 주기도문을 외웠더니 다시 요구했다.
“이번에는 사도신경을 외워 봐라!”
그의 책상 위에는 소광 선생과 서안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을 조사했던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보위부 간부는 서안 사역장에 대해서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몇 명이었으며, 어떤 사람이 언제부터 선생으로 세워졌으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소광 선생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그대로 다 말했다.

고향 보위부에서부터 조사를 받을 때 하나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다 썼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모든 활동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래야만 앞으로 계속되는 조사에서도 앞뒤가 맞게 된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숨기는 냄새가 나면 고통스러운 조사만 늘어날 뿐이다. 어차피 충분히 죽을죄를 지은 마당에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더 편했다.
“선생 세워졌나?”
“세워졌다.”
“통독은 어떻게 했나?”
“테이프 돌렸다.”
“테이프는 어떤 테이프야?”
“한국에서 온 테이프다.”
“이 새끼야! 한국이 아니라 남조선이라고 말해라!”
취조는 고문도 없었고 길지도 않았다. 2시간 만에 끝났다. 끝나면서 그 간부는 말했다.
“내일은 네가 가르쳤던 학생들에 대해서 물어볼 거다. 그러니 거기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라.”

그 간부는 다음 날 조사가 시작되자 절대로 학생들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전혀 다른 영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역시 2시간가량 조사하고 끝내면서 다시 요구했다.
“내일은 학생 모집하러 나갔을 때 활동 상황하고 남조선 사람하고 함께 활동했던 상황을 물어볼 거다. 대답을 준비해라.”
다음 날 보위부 간부는 역시 준비시켰던 질문에 대해서는 하나도 질문하지 않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조사를 했다. 노련한 사람이었다. 대답을 준비하게 해서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하는 조사는 대부분 준비 없는 영역에 대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거짓말을 하려는 사람은 짜 맞추지 못하게 된다.

서안에서 공부했던 일에 대한 조사가 다 끝나자 보위부 간부가 말했다.
“좋다 종교 믿는 거. 그거 좋다. 너 성경 공부 한 거? 그까짓 거 괜찮아. 공부할 수도 있겠지. 하나님 믿는 거? 믿어도 괜찮아. 이제 뭐 내가 믿지 말래서 네가 안 믿고, 내가 믿으라고 해서 믿고 그럴 건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너 남조선 선교사한테서 어떤 임무 받았나? 어떤 지령을 받았냐 하는 것이야.”
그 간부가 말하는 임무란 북한의 국가 시설을 파괴하고 간첩 조직을 만드는 간첩 임무였다. 우리는 그런 단체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복음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모임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지령이나 임무가 없습니다. 오직 두 글자, 사랑이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아직까지 받지 못했던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형제들은 나를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사랑으로 발까지 씻어 주었습니다.”
소광 선생은 조사를 통해서 오히려 그 보위부 간부에게 예수의 사랑과 복음이 무엇인지를 자상하게 가르쳤다.

보위부 간부는 소광 선생이 간첩 활동과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이번에는 조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사역장의 범위와 활동 방법, 활동 규정과 서안에서 벌어진 우리 사역장의 모든 일과들을 통해서 지금 한국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어떤 식으로 탈북자들을 교육해서 기독교를 전파시키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사가 마무리를 지어갈 무렵 고향에서 소광 선생 담당 보위부 지도원이 찾아왔다. 그가 감방 문을 열고 들어오자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제는 날 데려 가는구나. 이제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하는구나.’
각오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날이 오자 마음은 떨렸다. 고향 보위부 지도원이 노끈을 던져 주면서 말했다.
“옷을 다 입어라.”
그가 던져준 노끈으로 바지춤을 매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여태껏 소광 선생을 심문하던 보위부 간부는 평소와 같이 책상 쪽에 앉아 있었고, 고향에서 온 보위부 지도원은 소광 선생 옆에 앉았다. 보위부 간부가 의자 옆에 있던 버튼을 누르자 옆에 있던 전기문이 찡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오랫동안 조사실에 들어와 보았지만 그곳에 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청진 철도 보위부 부장이 들어왔다. 모두 경례를 하면서 일어났다. 보위부 부장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정자세를 하고 섰다. 판사가 선고를 하듯이 정중하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조선노동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장군님의 크나큰 배려와 사랑으로 너는 이 시간 이후로 모든 죄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너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소광 선생의 마음속에서 큰 돌멩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고향의 보위부 지도원이 소광 선생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청진 총국에서 고향 보위부 지도원을 호출하면서 말했다.
“야 올라오라. 신소광이 문제 때문이다.”
고향의 담당 보위부 지도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놈이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구나.’
마지막 길을 가는 것이 그래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광 선생의 누나에게 사실을 알렸다. 누나가 울면서 강냉이떡을 빚고 콩을 조금 삶아서 보위부 지도원에게 올려 보내 주었다. 그곳에 가면 굶주림에 사람이 말라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어 보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담당 보위부 지도원이 총국에 올라오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소광 선생을 석방시킨다는 지시를 받았다. 담당 보위부 지도원도 믿지 못했다고 했다.
“야, 이것 봐라. 너 누나가 이런 것까지 다 보냈어. 너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할 놈이야. 다행인 줄 알아. 너 같은 놈은 정말 희한한 놈이다. 처음 봤다 처음 봤어. 내 보위부 생활 30년을 하는데 너처럼 풀려 나오는 놈은 없었어. 너 어째서 풀려났는지 알아?”
소광 선생도 영문을 몰랐다. 모든 이들이 다 죽는다고 생각했던 소광 선생이 어떻게 되어 갑자기 살아나게 되었는지 담당 보위부 지도원이 더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니 아버지 덕인 줄 알아라. 인마!”

소광 선생이 청진 철도 보위부 총국으로 호송된 후 그에 대한 신원 조회가 시작되었다. 직계 가족, 친척 8촌까지 조사가 진행되었고, 외가 쪽 8촌까지도 조사를 했다. 조사를 해 보았더니 출신 성분으로는 너무 깨끗한 사람이었다. 남조선에 친척도 없었고, 과거에 범죄 경력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김정일 정부에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깨끗했다. 소광 선생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스스로 자원입대해서 김일성 정부를 위해 싸우다 부상을 당했고, 그의 일가친척 온 집안 모두 조선노동당에 충성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소광 선생의 과거도 깨끗했다. 범죄 경력도 없었고 북한 청년단에서 간부로 일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헤매고 다닐 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자 보위부 안에서 소광 선생의 문제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다. 이렇게 가계가 깨끗하고 오직 당에 충실한 집안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는가, 우연히 중국으로 탈북을 했다가 어쩔 수 없어서 이런 사건에 휘말려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담당 보위부 지도원도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너 이제 다시 중국으로 달아나거나 외국에서 살던 일들, 기독교에 대한 말을 한마디라도 사람들에게 하게 되면 그때는 더 이상 기회는 없다. 너는 항상 어디 가도 말조심하고 여기 안에서 조사받았던 모든 일들, 모든 말들을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에는 너는 정말 마지막이다.”
기적 같은 기이한 용서였다. 문득 감옥 안에서 느꼈던 이해할 수 없었던 평안한 마음이 떠올랐다.

소광 선생은 고향으로 내려와서 강제 노동단련대로 보내졌다. 철길에 못을 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의 청년단 간부의 삶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를 꺼려했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감시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괜히 잘못 걸려 조사를 받게 되면 무서운 일만 생기기 때문이다. 고독했다. 이제 여기에서 죽을 때가지 이렇게 살다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실수할 것 같은 기미라도 보이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야 한다. 다시 하나님 쪽으로 가야만 살 길이 생긴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소광 선생은 석방된 지 5일 만에 다시 밤을 타서 중국으로 탈북했고 나는 그를 한국으로 인도했다. 한국으로 온 후 소광 선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 후 우리와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지금도 소광 선생을 생각하면 늘 아쉽고 아까운 마음이 크다. 소광 선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만 하면 정말 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최효선 선생, 신소광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신소광 제자들

신소광사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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