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회 연혁
열방빛선교회가 걸어온 여정을 소개합니다
1998.08 ~ 2001.06
1차 탈북자 사역
최광 선교사는 1956년 경북 경산 자인에서 출생했다. 1992년 36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대구신학교 3학년에 편입하면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8월 8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북한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전도사 신분으로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사역이다 보니 마땅한 후원자가 없었다. 또한 북한 탈북자들을 북한 선교사로 양성하는 사역이었기에 노출할 수 없는 비밀 사역이었다. 이 사역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던 분은 당시 총신대 총장님이시던 故 김의환 목사님뿐이었다.
김의환 목사님과 여러 교회와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중국 길림성, 요녕성, 산동성, 하남성, 절강성, 사천성, 섬서성 지역을 옮겨 다니며 350여 명의 북한 형제자매들을 먹이고 입히고 함께 생활하면서 강도 높은 선교사 양성 훈련을 진행하였다. 이 중 250명의 탈북자들이 주님을 영접하였고, 70여 명은 신약 성경 100~200독, 구약 성경 20~30독, 말씀 300~1200절을 암송하고, 설교도 할 수 있는 귀한 북한 출신 북한 선교사로 세워져 함께 사역을 감당하였다.
2001년 6월 11일, 조선족 동역자의 밀고로 북한 형제들 74명과 함께 중국 섬서성 서안에서 중국 공안과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 중 59명의 북한 형제들은 북송되었고, 최광 선교사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로써 계속 확장되어 가던 3년간의 사역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의로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북송된 북한 형제들 중 6명이 순교하였고, 11명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으나 대부분 현장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2~2003
선교회 및 열방빛교회 설립
2002.10.13 열방빛교회 예배 시작 (경기도 안산)
2003.04.11 열방빛교회 이전 예배 (서울 금천구 시흥동)
2003.05.25 열방선교회 설립 (서울 금천구 시흥동)
2001년 6월에 추방된 후 중국 입국이 금지되어 한국에서 북한 선교 사역을 계속하였다. 중국에서 함께했던 형제들이 한국으로 입국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향한 사역의 필요를 느끼고 열방빛교회와 선교회를 세웠다.
이때부터 교회와 선교회를 중심으로 중국 감옥과 북한 감옥에 있는 북한 형제들을 석방시키고, 북송되었다가 다시 중국으로 탈출한 선생들과 학생들을 한국으로 구출하는 사역을 하였다. 이 사역으로 서안에서 함께했던 형제들 중 50여 명이 한국으로 안전하게 귀순하였다.
또한 한국으로 들어온 북한 선생들과 학생들의 신학 공부를 후원하여 이들이 북한 선교사로 계속 준비될 수 있게 하였다. 그 중 5명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정규 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북한 선교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8.04 ~ 2010.12
2차 탈북자 사역
2008년 4월 중국 입국 비자가 회복되면서 중국에서의 북한 선교 사역을 재개하였다. 중국으로 다시 들어가 흑룡강성, 사천성 지역에서 성경 통독 사역을 이끌었다. 10여 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활 하며 말씀 통독과 암송을 통해 신앙을 갖게 하고 북한 선교사로 훈련하였고, 한국으로 인도하였다. 가정이 있어 성경 통독 사역장에서 훈련받기 어려운 흑룡강성 하얼빈, 가목사(시), 벌리현(보리현) 일대의 30여 명의 북한 자매들은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하여, 예배와 말씀 암송을 인도를 통해 신앙을 가지도록 돕고 생활도 도왔다. 또한 많은 중국 내 북한 고아들을 돕고, 동시에 북한의 지하 교회를 후원하였다.
2011.08 ~ 2012.05
황금종교회 설립, 예배 시작
2011.08.07 황금종교회 예배 시작 (서울 구로구 온수동)
2012.05.19 황금종교회 이전 예배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최광 선교사는 2010년 말 사역장에서 함께 생활하던 서인철 형제를 한국으로 구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탈북자 사역을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다. 인철 형제를 데리고 태국으로 가기 위해 중국 운남성 곤명 지역에 도착했는데, 북한 사람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한국 사람들 집집마다 수색하고 있는 몇 십 명의 북한 보위부 요원들과 맞닥뜨렸던 것이다.
또한 북한이 2009년 화폐 개혁에 실패하여 경제가 완전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김정은이 정권을 이양받은 후 군부와 보위부를 강화시키면서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탈북자들에 대한 물리적 제재를 강화하였다.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한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체포하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 간 국경까지 봉쇄하였다. 대부분의 탈북자들도 전보다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중국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북한 선교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셨다. 중국에서도 북한 선교 사역을 계속해야 하지만, 한국에 있는 2만 5천 명의 탈북민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이 더 시급함을 깨닫게 하셨다. 북한이 머지않아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여 2011년 8월 서울 구로구 온수동 사택에서 황금종교회 첫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세계 수많은 지역에 천국 복음의 종, 황금종을 울려 퍼지게 할 교회들을 세우시겠다는 비전을 주셨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꿈이고 비전이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신 찬송 226장의 이 비전을 따라 지었다.
첫 예배를 드릴 때 순교 예상자 정용철 선생의 아들 정봉철 형제, 2차 탈북자 사역 때 가르쳤던 황성철, 이광철 형제, 광철 형제 친구 주철명 형제, 1차 사역 3기생으로 훈련받았던 최효선 형제가 함께했다. 사택 교회에 북한 청년들이 찾아오기 시작해 5개월이 지나자 50여 명이 되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인원은 불어났다.
황금종교회는 2012년 4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현재 장소로 이전하였다. 강명순 집사님께서 이 건물을 무료로 대여해 주셨고, 남서울교회 여전도회에서 바자회를 열어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해 주셨다. 2013년 1월 현재 200여 명 재적 인원 중 50~70여 명의 북한 청년들이 출석하고 있다.
다섯 분의 전도사님들과 함께 힘을 다해 이들 북한 청년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신앙 안에서 꿈과 비전을 갖게 하며, 북한과 아울러 온 세계 열방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고 있다.
2020.11~
유튜브 채널 내래TV 개설 및 문화사역 시작
2022~
AGAIN 1907 평양대부흥회 및 해외선교운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