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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배용호

중국 1차 사역 / 김누가 선생 사역장,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김누가 선생 사역장,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화산, 도문
주요 역할
조선족 성경훈련생, 통번역 봉사,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서안에서 체포되어 도문으로 호송됨. 도문 감옥에서 석방된 뒤 연락이 끊김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북한 형제들의 경계를 풀어 준 조선족 청년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 알려진 성경통독 사역

북한 탈북자들을 성경통독으로 훈련해 지도자로 세우는 사역이 3기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북한 형제들과 조선족 형제들이 사역장을 거쳐 갔다. 이들은 짧은 기간 안에 생활 태도가 달라지고 성경을 이해하고 전하는 힘도 빠르게 성장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연변의 작은 시골 교회에서 섬기던 집사와 전도사들은 사역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독학과 참고서로 성경을 공부해도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통독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보여 주는 변화와 말씀의 깊이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조선족 청년

조선족 형제들이 사역장에 들어오는 조건은 단순했다. 북한 형제들과 1년 동안 합숙하며 무료로 통번역을 돕고, 동일한 성경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연변 신풍교회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여러 조선족 청년이 이 소식을 듣고 사역장을 찾아왔다. 배용호 형제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작은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싶었던 꿈

배용호 형제는 연변의 시골 마을에서 살며 예수님을 뜨겁게 영접했고, 혼자서 성경을 많이 공부했다. 언젠가 말씀을 더 깊이 배워 자신이 사는 마을에 아담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신풍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성경통독 사역을 알게 되었고, 더 체계적으로 말씀을 배우기 위해 서안의 사역장으로 왔다.

김누가 선생 사역장에 배치되다

당시 김누가 선생 팀에는 김순종 선생과 최호근 선생을 비롯한 여러 조선족 형제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1기와 2기 때에는 조선족 동역자를 찾기 어려웠지만, 3기에 이르러서는 사역장마다 조선족 형제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올 만큼 소문이 퍼져 있었다.

새로운 사역장이 만들어지면 배용호 형제를 배치하기로 하고, 우선 비교적 온순한 분위기의 김누가 선생 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김누가 선생은 나이는 어렸지만 신학생들을 가르칠 만큼 충분한 말씀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신학보다 통독에서 길을 찾다

김누가 선생 사역장에서 한동안 공부한 배용호 형제는 훈련에 크게 만족했다. 그는 이런 사역장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며, 앞으로는 신학 공부보다 성경통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학을 배울수록 오히려 더 어렵고 혼란스러웠지만,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읽고 배우는 과정에서는 말씀의 전체 흐름을 붙잡을 수 있다고 느꼈다.

북한 형제들의 경계를 풀어 준 순수함

배용호 형제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청년이었다. 마음에 충만한 신앙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해맑고 순진한 인상을 주었다.

거칠고 공격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온 북한 형제들에게 그의 부드럽고 맑은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북한 형제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부드럽다며, 자신들이 오히려 그를 보호해 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사랑받는 공동체의 동생이 되다

배용호 형제를 만난 북한 형제들은 쉽게 경계심을 풀었다. 거칠게 굳어 있던 태도를 내려놓고 천진하게 웃으며 장난을 쳤고, 그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배용호 형제도 북한 형제들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형제들과 즐겁게 생활했다. 그의 존재는 사역장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려는 열정

배용호 형제는 성경통독에 대한 욕심이 컸다. 사역장에 머무는 동안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제대로 배우고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꾸준히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모든 훈련에 성실하게 참여했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앙과 앞으로의 사역을 말씀 위에 세우려 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다

3기생 북한 선생들이 화산에 올라가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을 때 배용호 형제도 함께 세워졌다. 그는 조선족이었지만 북한 형제들과 같은 공동생활과 말씀훈련 과정을 충실히 마쳤고, 북한 복음을 위해 헌신할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북한 형제들과 함께 찍은 화산의 기념사진은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말씀과 사명 안에서 한 팀으로 세워졌던 순간을 보여 준다.

자신의 사역팀을 맡고 싶었던 청년

훈련을 마친 배용호 형제는 직접 사역팀을 맡아 말씀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세우고 싶어 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처음의 꿈은 북한 형제들과 함께 지내며 더 넓은 선교의 꿈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사역장이 열리면 그에게도 책임을 맡길 계획이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예상하지 못한 체포 사건이 일어났다.

서안에서의 체포와 도문 호송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한꺼번에 체포될 때 배용호 형제도 함께 붙잡혔다. 그는 다른 조선족 형제들과 함께 도문으로 호송되었다.

북한 형제들은 북송의 위험에 놓였고,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형제들은 중국 내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배용호 형제가 품었던 사역의 계획도 이 사건으로 중단되었다.

석방 이후 끊어진 연락

배용호 형제는 도문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그러나 석방된 이후에는 다시 연락이 닿지 않아 어디에서 어떤 삶을 이어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성경을 깊이 배우려는 열정이 있었고, 순수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북한 형제들의 굳은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었다. 짧은 공동체 생활이었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과 말씀 안에서 가까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준 청년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