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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최게바

중국 1차 사역 / 박다윗·정용철 선생 사역장 /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박다윗·정용철 선생 사역장 /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화산, 북한, 중국, 한국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서안에서 체포되어 북송된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으며, 이후 한국으로 인도됨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거칠고 난폭했던 청년이 말씀과 공동체 훈련을 통해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이야기

박다윗 선생이 연변에서 데려온 형제

최게바 선생은 2기생 박다윗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학생으로 데려온 북한 청년이었다. 박다윗 선생의 사역장에서 성경훈련을 시작했지만, 북한 보위부 특무가 개입하면서 사역장이 해체되었다.

갈 곳을 잃은 게바 형제는 이후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으로 옮겨 훈련을 계속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부터 이어진 거친 삶

게바 형제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싸움과 폭력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박다윗 선생 밑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지냈지만, 정용철 선생 사역장으로 옮긴 뒤에는 다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팀의 책임자인 정용철 선생을 제외한 형제들과 계속 부딪쳤고, 성경훈련을 힘들어하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지치게 했다.

사람을 바꾸어 가며 일으킨 충돌

게바 형제는 윤병조 형제와 크게 다툰 뒤에는 최요한 형제를 건드렸고, 다음에는 최동철 형제를 괴롭혔다. 공동체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갈등이 일어났다.

연변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물으면 갈 곳이 없다며 사역장에 남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다른 형제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씩씩하게 약속했지만, 돌아서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내보낼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었던 사람

정용철 선생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며 게바 형제를 사역장에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가 쫓겨나면 돌아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연변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고, 새로운 사역장에서도 받아 주려 하지 않았다. 공동체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했다.

또 한 명의 거친 청년, 이철민 형제

마침 김누가 선생도 자기 사역장의 이철민 형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철민 형제 역시 힘이 세고 성질이 급해 다른 사역장에서 맡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을 같은 사역장에 두면 서로를 의식하면서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해 이철민 형제를 정용철 선생 사역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정용철 선생은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마지막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질서

이철민 형제가 들어온 다음 날부터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큰 싸움이 벌어졌고 게바 형제는 앞니 네 개가 부러질 정도로 다쳤다.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게바 형제는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거절했다. 폭력적인 충돌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 사건 이후 사역장 안의 힘의 관계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사역장에 찾아온 평화

힘만 앞세우던 게바 형제와 달리 이철민 형제는 강한 성품 속에서도 공동체의 질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게바 형제도 더 이상 다른 형제들을 마음대로 괴롭히지 못했다.

정용철 선생은 이철민 형제도 변했고 게바 형제도 순한 양처럼 달라졌다며 사역장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마침내 성경 앞에 앉다

그때부터 게바 형제는 통독 시간에 자리를 지키며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힘과 위협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던 사람이 공동체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말씀 앞에 앉은 것이다.

성경을 반복해 읽으며 그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훈련을 피하던 사람에서 훈련을 견디는 사람으로 달라졌다.

영성 강의에서 받은 은혜

표정훈 목사님이 여러 사역장의 형제들을 모아 영성 강의를 할 때 게바 형제는 집중적으로 지켜보아야 할 사람이었다. 갑자기 소란을 일으키거나 강의를 방해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 달리 누구보다 집중해 강의를 들었다.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깊은 은혜를 경험했고, 주변 형제들도 그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했다.

공동체를 위해 짐을 지다

화산에 올라갈 때 게바 형제는 힘이 세다는 이유로 팀의 간식과 물을 대부분 짊어지고 올라갔다. 때로는 장난을 치고 다른 사람의 사진 촬영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감당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데 사용하던 힘이 이제는 형제들의 짐을 대신 지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다

게바 형제는 3기생 형제들과 함께 모든 성경훈련과 선교사 준비 과정을 마쳤다. 이후 화산에 올라가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갈 곳이 없어 사역장에 남겨 달라고 매달리던 거친 청년이 말씀과 공동체 훈련을 거쳐 복음을 전할 사람으로 세워진 것이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체포되다

북한 선교사로 임명된 뒤 게바 선생은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대기했다. 그러나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일제히 체포되면서 그도 함께 붙잡혔다.

그는 실제로 사역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쳐 보기도 전에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한국으로

북한으로 끌려갔던 게바 선생은 이후 다시 중국으로 넘어와 사역자들을 찾아왔다. 체포와 북송을 겪은 뒤에도 중국에서 함께했던 공동체와의 연결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 후 게바 선생은 한국으로 인도되었다. 난폭함과 힘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그의 과정은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공동체 훈련의 의미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