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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최호근

중국 1차 사역 / 이용섭·김누가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이용섭·김누가 선생 사역장 / 3기 북한 선교사 임명
주요 사역 지역
서안, 화산, 연길·도문·왕청, 한국
주요 역할
조선족 성경훈련생, 통독 사역자, 탈북민 구조·한국 입국 지원
최종 기록
탈북민 지원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5년 수감. 출소 후 한국에 정착해 교제를 이어감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아들의 변화에 이끌려 말씀을 만나고, 사람을 살리는 일꾼이 된 사람

술과 오락에 빠져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

최호근 선생은 중국 조선족으로, 왕청현 삼도구에서 살았다. 그는 오랫동안 일정한 일 없이 술에 의지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 최빌립 형제도 술과 담배, 게임과 오락에 빠져 지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삶의 뚜렷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아들

최빌립 형제는 1기생 김권능 선생의 사역장에서 성경을 100번 이상 통독하며 하나님을 분명하게 경험했다. 그러나 당시 열여덟 살이었기 때문에 훈련이 끝난 후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술과 담배를 끊었고, 말과 행동에는 예의와 진지함이 생겼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성경도 깊이 이해하고 설명했다. 일가친척들은 그의 변화를 보고 놀랐다.

“가서 사람이 되어 오라”는 큰어머니의 권유

최빌립 형제의 큰어머니는 변화된 조카를 보고 시동생인 최호근 선생에게 서안 사역장으로 가서 성경을 배우라고 강하게 권했다. 술로 세월을 보내지 말고 이번 기회에 사람이 되어 돌아오라고 호통을 쳤다.

최호근 선생도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자신도 성경을 배우면 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역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안으로

그러나 최빌립 형제는 아버지가 사역장 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거기는 술 먹는 데가 아닙니다. 며칠 가지도 못하고 쫓겨 올 겁니다”라고 말했다.

최호근 선생은 오히려 발끈해 아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자신이 술을 마시더라도 아들과 마실 것이 아니라 그의 선생과 마실 것이라며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2기생 이용섭 선생을 따라 서안으로 내려왔다.

술 없이 견딘 첫 3개월

사역장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최호근 선생은 아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던 사람에게 기도와 성경 통독, 공동체 생활은 매우 고통스러운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씩 버텼고, 결국 3개월을 견디며 공부를 이어 갔다. 술에 대한 의존도 점차 끊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3개월의 훈련을 지나며 최호근 선생은 자신의 삶이 실제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최광 선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제 술을 완전히 끊고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네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새로운 꿈을 밝혔다. 방탕한 삶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아들보다 어린 김누가 선생에게 순종하다

이용섭 선생이 전문 학생 모집을 위해 연변으로 파송된 뒤 최호근 선생은 김누가 선생의 사역장에서 공부했다. 이용섭 선생은 연장자였지만, 김누가 선생은 그의 아들보다도 어린 지도자였다.

그러나 최호근 선생은 나이를 앞세우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밝고 명랑한 태도로 김누가 선생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성경을 배웠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그의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검은색이 하얀색으로 변한 것 같은 변화

이전의 혈기와 방탕함은 사역장 생활을 거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3기생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사람을 꼽는다면 최호근 선생이라고 할 만큼 삶의 방향과 태도가 달라졌다.

술로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 기도와 말씀을 즐기고, 자기 뜻을 앞세우던 사람이 어린 지도자를 섬기며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검은색이 하얀색으로 바뀐 것 같은 변화였다.

성경 100독과 북한 선교사 임명

최호근 선생은 사역장의 강도 높은 훈련을 끝까지 마쳤다. 성경을 100번 이상 통독하고 말씀 암송과 설교, 공동체 훈련을 이수했다.

그는 3기 북한 선생들과 함께 화산에 올라 북한 선교사 임명예배를 드렸다. 조선족이었지만 북한 동포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함께 세워졌다.

서안 체포와 도문 감옥의 열다섯 날

사역을 위해 대기하던 중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게 적발되었다. 최호근 선생도 북한 형제들과 함께 체포되어 도문까지 호송되었다.

중국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송환되지는 않았지만, 도문 감옥에서 열다섯 날을 보낸 뒤 석방되었다. 함께 공부한 북한 형제들이 북송되는 상황에서 자신만 풀려나야 했던 일은 큰 아픔으로 남았다.

무너진 사역장을 다시 세우다

서안 사역장들이 모두 무너진 뒤에도 최호근 선생은 신재록 선생과 몇몇 조선족 사역자들과 함께 연길에 다시 사역장을 마련했다. 체포와 추방으로 흩어진 상황에서도 성경 통독 사역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서안 사역장들이 조선족 김광철의 일로 적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북한 형제들과 최광 선교사에게 깊이 미안해했다. 자신이 직접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조선족으로서 책임을 느끼며 슬퍼했다.

한국으로 추방된 스승에게 보낸 편지

최광 선교사 가족이 한국으로 추방된 뒤, 최호근 선생은 따뜻한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가족의 안부를 묻는 마음과 서안 체포 사건에 대한 미안함, 도문 감옥에서 보낸 시간과 현재의 사역 상황이 담겼다.

그는 연길의 장로교회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며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편지 전문은 문서 뒤의 부록에 따로 수록했다.

북한 자매와의 결혼, 그리고 새로운 사명

훗날 최호근 선생은 북한 출신 자매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그는 중국에 숨어 지내는 탈북민들을 돕고 안전하게 한국으로 보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사역장에 들어왔던 사람이 이제는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다른 북한 형제들의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 되었다.

탈북민들의 한국 입국을 돕다

김권능 선생이 중국에 흩어진 탈북자들과 서안에서 함께 공부했던 형제들을 다시 찾아 한국으로 보내는 일을 할 때, 최호근 선생은 곁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도움으로 여러 북한 형제와 선생들이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서안 체포 사건 이후 품고 있던 미안한 마음을 사람을 살리고 돕는 일로 갚고 싶어 했다.

탈북민을 도운 죄로 5년을 수감되다

탈북민의 국경 이동과 한국 입국을 돕던 중 김권능 선생이 체포되었고, 이어 최호근 선생도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그는 북한 탈북자들의 불법 월경을 도왔다는 혐의로 5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도운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출소 후 한국 정착과 다시 이어진 교제

감옥에서 나온 뒤 최호근 선생은 한국으로 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주 최광 선교사를 찾아왔고, 최광 선교사도 그를 찾아가 함께 식사하며 지나온 시간을 나누었다.

아들의 변화에서 시작된 그의 신앙 여정은 성경훈련과 선교사 임명, 통독 사역, 탈북민 구조와 수감 생활을 거쳐 한국에서의 교제로 이어졌다.

역사적 평가 - 받은 변화를 다른 사람의 생명으로 돌려준 사람

최호근 선생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변화가 가족과 공동체를 넘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사역으로 이어진 과정이다. 처음에는 아들의 변화에 이끌려 사역장에 들어왔지만, 그는 스스로 말씀 앞에서 변화되었고 결국 다른 사람의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 되었다.

술 없이는 살 수 없던 사람은 성경을 100번 읽는 선교사가 되었고, 자신의 삶만 생각하던 사람은 탈북민들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했다. 그의 삶은 받은 은혜를 행동으로 갚아 간 한 조선족 동역자의 증언으로 남아 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최광 선교사에게 보낸 편지

작성 당시의 표현과 표기를 최대한 보존하였다.

할렐루야

존경하는 최 선생님 안녕하세요.

권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최 선생님의 자제 분들도 무사하신지요. 갈라진 지 두 달이 되는군요.

이번에 얼마나 놀라셨는지요. 김 선생 과오로 인하여 저도 선생님들과 북한의 형제들에게 매우 미안해요. 저도 연변에 돌아온 후 도문 감방에서 십오 일 감옥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신재록 선생님과 같이 통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상락 전도사님과 채 집사님에게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고 현재 계속해서 하나님 공부를 하고 계신다니 매우 반갑습니다.

나는 오늘 연길 장로교 하남교회에 신입생으로 들어갔어요. 공부를 하는 데는 고난이 많지만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탁하면서 노력하겠어요. 우리 함께 하나님 품속에서 서로 소식을 전하면서 주님의 일꾼으로 손색없이 힘 다합시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선생님의 우수한 성적을 따내시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어요.

선생님과 권사님, 사모님 옥체 건강을 바라면서 또 선생님의 자제 분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따 내기를 바랍니다. 서투른 필체를 이만 놓겠어요..

학생 최호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