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엘리트 가정의 추방과 상처
허익두 선생의 아버님은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교 핵물리학 박사였다. 60년대 초 김일성이 “사회주의 조국으로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본 조총련계 동포들을 북한으로 끌어갈 때, 그 선전에 속아 일가족을 이끌고 북한으로 넘어왔다. 그의 아버님은 김일성의 특별한 초청으로 북한에 들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연구소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간첩으로 모함을 받아 정치범들이 가는 탄광촌으로 추방되었다.
핵물리학 엘리트였던 아버지는 평생을 시멘트 공장의 하급 노동자로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숙청되어 시골로 내려온 뒤에는 술로 세월을 보냈고, 가정 형편은 계속 어려워졌다. 충격을 받은 익두 선생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사무쳐 어릴 때부터 자주 악몽에 시달리며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러나 익두 선생은 아버님의 천재성을 닮아 총명한 머리를 가졌다. 하나를 가르치면 거의 열을 내다볼 정도였다. 북한에서 숙청된 집안의 자녀였지만 인재성을 인정받아 3년제 고급전문대까지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