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홍충민

북한 출신 / 중국 허익두 선생 사역장 훈련생, 성경 100독·세례 / 이후 한국 입국

소속 / 사역기수
북한 출신 / 중국 허익두 선생 사역장 훈련생, 성경 100독·세례 / 이후 한국 입국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부모를 기다리다 길거리에 남겨진 아이

홍충민 선생은 북한에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간 부모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날 이후 그는 집도 보호자도 없이 길거리에서 살아야 했다. 북한에서 말하는 ‘꽃제비’가 된 것이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일이 그의 어린 시절이었다.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생활의 규칙과 관계를 배워야 할 때, 그는 스스로 살아남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중국 교회를 전전하며 선교사들의 보호를 받다

중국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을 들은 어린 홍충민 선생은 국경을 넘었다. 연길의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부모 없이 거리에서 살아온 그의 고단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그러나 대부분 단기 사역을 마치면 떠나는 사람들이어서,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책임지며 삶의 질서와 공동체 생활을 가르쳐 주기는 어려웠다. 잠깐씩 성경을 배우며 한글은 익혔지만 자기 통제와 생활 습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기회는 부족했다.

열여덟 살,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들어오다

홍충민 선생이 허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들어왔을 때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탈북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도, 강도 높은 성경훈련도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생활하고 질서를 따르는 일을 그는 몹시 힘들어했다.

오랫동안 여러 선교사에게 들은 성경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그 지식을 앞세워 허익두 선생을 가르치려 했다. 성질이 급한 허익두 선생과 자유롭게 살아온 어린 충민 형제는 자주 부딪혔다.

한 달 만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다

공동체 생활을 견디지 못한 홍충민 선생은 사역장에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자기를 돌봐 주던 선교사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그 선교사는 그를 다시 받아 주지 않았다. 충민 형제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려면 훈련을 받고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다시 사역장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허익두 선생의 요구에 반항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그곳을 떠나기보다 그 안에서 버티며 배워야 했다.

충돌 속에서 공동체와 진짜 사랑을 배우다

사역장은 홍충민 선생이 처음으로 오래 머문 공동체였다. 그는 형제들과 부딪히고 꾸지람을 들으면서 인사하는 법, 약속을 지키는 법, 감정을 참는 법을 하나씩 배워 갔다. 허익두 선생과 형들은 때로 심하게 나무랐지만 그를 포기하거나 내쫓지는 않았다.

그동안 받아 온 도움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네는 친절과 동정에 가까웠지만, 사역장 공동체는 잘못을 바로잡고 한 사람이 제대로 설 때까지 책임졌다. 그는 자신을 구박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태도 속에 진짜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사역장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식으로 알던 성경이 삶의 말씀이 되다

마음이 열리자 홍충민 선생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이전의 성경 공부는 아는 것을 보여 주고 칭찬이나 도움을 받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성경에 관한 말은 많이 알고 기도도 유창했지만, 그 지식은 삶과 분리되어 있었다.

허익두 선생 밑에서 성경을 반복해 읽고 공동체 훈련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씀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임을 배워 갔다.

성경 100독과 설교 훈련, 그리고 세례

홍충민 선생은 허익두 선생의 지도 아래 성경을 100번 통독했다. 말씀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설교하는 훈련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여러 훈련도 받았다. 모든 과정을 마친 뒤 그는 비로소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했다고 고백했다.

김의환 총장님이 사역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설교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김의환 총장님에게 세례를 받았다.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을 생각하던 청년이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신앙인으로 성장한 순간이었다.

파송팀에 들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오다

허익두 선생의 팀이 북한선교를 위해 파송될 때 홍충민 선생은 함께 파송되지 못하고, 원래 자신을 돌봐 주던 선교사에게로 돌아갔다. 다른 형제들과 같은 길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사역장에서 받은 성경훈련과 공동체의 경험은 그의 삶에 남았다.

훗날 최광 목사님이 중국 서안 사역장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북한 형제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때, 홍충민 선생도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의 기록은 한 꽃제비 청년이 동정을 받는 대상에서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 삶을 배우고 성장해 간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