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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1기 · 중국 1차 사역

전요셉

중국 1차 사역(1기) / 조선족 협력자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1기) / 조선족 협력자
주요 역할
통역과 생활 지원, 북한 선생들의 중국 생활 보조, 2기 사역 연결
주요 지역
지린성 지린시, 산둥성 지난시, 옌볜 조선족 자치주 카이산툰, 허난성 정저우시

1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지난 사역장에 필요했던 조선족 협력자

1기 사역을 시작하고 지린성 지린시에서 몇 달 동안 공부하던 우리는 산둥성 지난시로 이사했다. 이때 함께 공부하던 중국인 조선족 강길호 선생이 독립적인 사역을 하고 싶어 우리와 헤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중국인 조선족의 도움 없이 지난시로 들어가야 했다.

우리 중에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어도 모르고 가이드도 없는 한 무리의 이방인들이 중국 대도시 한복판에서 살아야 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중국인 조선족 선생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고 우리와 함께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와 북한 선생들은 이 문제를 두고 주님께 많이 기도했다.

전관화 선생의 합류와 전요셉이라는 이름

지난에 도착한 얼마 후 주광호 선생이 전관화 선생을 데리고 우리 사역장으로 왔다. 우리의 형편을 알고 있던 주광호 선생이 일부러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옌볜까지 가서 사람을 찾아 데리고 온 것이다.

북한 선생들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중국인이라고 해도 벌금을 물고 여러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전관화 선생도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우리는 그를 전요셉 선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요셉 선생은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카이산툰 교회 총집사의 아들

요셉 선생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카이산툰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카이산툰은 중국과 북한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국경의 작은 조선족 시골 마을이었다. 요셉 선생의 아버지는 그곳 교회의 총집사님이었다. 한국 교회처럼 장로 체제가 없는 곳이라 총집사는 한국 교회의 장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직책이었다.

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국경을 넘어오는 많은 탈북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분이었다. 굶주린 탈북자들이 넘어오면 먼저 배불리 먹여주고, 남루한 옷을 벗기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자기 집에 숨겨 주었다. 그렇게 몇 명이 모이면 주광호 선생에게 연락했다. 주광호 선생은 그들을 중국의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거나,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을 한국 선교사들이 있는 사역장으로 인도했다. 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북한 사역의 보이지 않는 큰 일꾼이었다.

한국 선교사에 대한 반감과 아버지의 부탁

탈북자들을 돕는 일이 많다 보니 한국 선교사들이 요셉 선생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상처를 받은 것인지 요셉 선생은 한국 선교사들을 너무 싫어했다. 선교사님이 온다고 하면 문을 잠가 놓고 기다렸다가 밖에서 쫓아버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아버님이 많이 속상해했다.

속이 상한 집사님이 주광호 선생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자, 주광호 선생은 지난시에 있는 우리 사역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사님은 아들을 우리 사역장으로 보내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광호 선생은 전요셉 선생을 설득했다. 얼리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자, 일단 한 달 동안 여행 삼아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돌아와도 좋다고 말해 데리고 왔다.

나는 요셉 선생의 일은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당장 조선족 선생이 없어 위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그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또 우리 사역장에 들어오면 험하고 거친 북한 선생들도 변화되었듯 요셉 선생도 충분히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북한 선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조선족 형제

어려서부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을 건너다보며 살았고, 탈북자들도 자주 만나며 살았기 때문에 전요셉 선생은 탈북자들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북한 선생들도 전요셉 선생을 중국 사람이라기보다 자기들과 같은 북한 사람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전요셉 선생은 축구를 잘했다. 옌지 중학교를 다닐 때 학교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북한 선생들과 축구를 할 때면 제일 신나고 즐거워했다. 정저우대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 우리 모습이 하도 신나 보여 그곳 학생들이 팀을 나누어 시합을 하자고 했다. 상대팀에는 정저우시 시립 축구단 프로 공격수도 있었다. 하지만 악동들로 뭉친 우리 선생들이 3대 0으로 이겼다. 그때 전요셉 선생이 정말 잘했고, 대부분의 골을 그가 넣었다. 모두가 월드컵에서 1등을 한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구경꾼에서 사역장의 한 멤버로

사역장에 온 요셉 선생은 처음에는 그저 놀러 온 사람처럼 지냈다. 성경 통독도 구경삼아, 재미삼아 해보았고 기도 시간에도 별로 진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요셉 선생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마다 내가 통곡하며 기도하고, 북한 선생들도 통곡하며 울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도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통독과 사역장의 모든 일과에도 성실하게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라 이 사역장의 한 멤버라고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요셉 선생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여기 재미있습니다, 선교사님”

한 달이 지났지만 요셉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집에 안 가요?”

“여기 잼있습니다. 선교사님.”

연변 사람 특유의 짧은 대답이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통독 시간이랑 기도할 때에 마치 천국 같습니다. 이번 1기 사역이 마무리될 때까지 여기서 공부하면서 통역하는 일을 돕겠습니다.”

요셉 선생이 간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주님이 그의 마음을 돌려주셨다. 이렇게 해서 중국인 조선족 선생이 없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빠르게 회복된 신앙과 설교의 성장

요셉 선생은 뒤늦게 우리 사역에 합류했지만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신앙도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꽤 많았다. 그래서 은혜를 받는 속도도 빨랐고 회복되는 속도도 빨랐다. 특히 설교하는 능력이 빠르게 자라났다.

그는 처음에는 사역장을 구경하듯 바라보았지만, 통독과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뒤에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었다. 그는 북한 선생들을 돕는 통역자이자 함께 말씀을 배우는 동역자로 자리 잡았다.

1기 사역 이후, 아버님의 큰 헌신

1기생 북한 선생들이 옌볜으로 파송되어 활동할 때 전요셉 선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직접 북한 형제들을 모집해 사역하는 일은 하지 못하겠지만, 1기 선생들을 도와 2기 사역도 돕겠다고 했다.

변화된 아들을 만나본 집사님은 크게 만족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셉 선생이 한국의 어떤 선교사님이나 목사님 못지않게 설교를 잘하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 어쩔 바를 몰라 하셨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우리 사역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1기생 선생들을 파송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사역비를 보내주지 못했다. 선생들은 북한 형제들을 모집했지만 그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유지할 돈이 없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이 나섰다. 집사님은 그 작은 시골 동네에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돈을 빌렸다. 자기 집에 있던 돈도 다 털어 우리 선생들에게 2만 위안이라는 거금을 주었다. 당시 중국인 한 달 인건비가 500위안 정도였으니, 중국 사회에서는 정말 큰돈이었다. 1기생 선생들은 전요셉 선생 아버님이 주신 돈으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북한 선교의 큰 장을 여는 숨은 연결자

전요셉 선생의 아버님은 이후에도 사방으로 흩어져 활동하는 우리 선생들의 중간 연락처 역할을 해주셨다. 북한 선교의 큰 장을 여는 데 있어서 전요셉 선생 아버님의 활약은 정말 컸다.

전요셉 선생 또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1기 사역의 중요한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이었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위험한 시기에 그는 사역장 안에 들어왔고, 처음에는 손님처럼 머물렀지만 결국 통독과 기도 속에서 은혜를 경험하고 사역장의 한 멤버가 되었다.

이후 근황과 감사

전요셉 선생은 그때 하나님께 헌신했기에 지금은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얼마 전 안부 전화를 하며 근황을 물었더니 그는 하나님이 정말 자기를 많이 축복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많이 행복했다. 그는 짧지만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 사역을 도왔고, 그의 아버님은 북한 선교의 큰 장을 여는 데 보이지 않는 큰 헌신을 감당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복 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