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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조봉희

중국 1차 사역 / 최순교 선생 사역장 (2000~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최순교 선생 사역장 (2000~2001년)
주요 사역 지역
서안, 연변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성경 100독,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파송 중 중국 공안에 체포·북송된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옴. 이후 한국 입국, 원문 기록상 인천 정착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술 중독을 끊고 공동체를 웃게 한 권투선수 출신 북한 선교사

온성군 체육단의 권투선수

조봉희 선생은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체육단에서 권투선수로 활동했다. 강한 체력과 승부 근성이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최순교 선생의 사역장에 들어온 뒤에도 그는 겉으로는 순종하는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자신의 욕구와 갈등을 감추고 있었다. 대놓고 맞서는 사람보다 조용히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는 그의 태도 때문에 최순교 선생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딱 한 번만 술을 사 주십시오”

어느 날 조봉희 선생은 조용히 최순교 선생의 방을 찾아와 부탁했다. “선생님, 한 번만, 딱 한 번만 술을 사 주십시오. 그러면 꼭 끊겠습니다.”

다른 형제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하지 않고 조용히 사정하니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순교 선생은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 술을 사 주었다. 그러나 며칠 뒤 같은 부탁이 반복되었고, 또 며칠 뒤에도 다시 술을 찾았다. 그제야 최순교 선생은 그가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술에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매질 끝에 함께 흘린 눈물

술을 마신 뒤에도 계속 술을 달라고 조르는 조봉희 선생을 보며 최순교 선생은 말로만 타일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 땅바닥을 치며 꾸짖었다.

“제발 정신 차려라. 죽기 살기로 살아도 될까 말까 한 탈북자의 인생을 짐승처럼 살다 끝낼 것이냐?”

때리며 꾸짖던 최순교 선생의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다. 마침내 그는 봉희 선생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봉희 선생도 함께 울었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는 술을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술 생각이 날 때마다 시작한 금식

어느 날 조봉희 선생이 금식을 시작했다. 최순교 선생이 기도 제목을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술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그는 술을 끊었다고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술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금식과 기도로 싸웠다. 권투선수로서 상대를 이기던 힘을 이제는 자신의 욕망과 습관을 이기는 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체를 웃게 한 코미디 은사

조봉희 선생에게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가 작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무도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사역장 분위기가 어둡고 형제들의 마음이 지쳐 있을 때면 그는 익살스러운 말과 몸짓으로 모두를 웃게 했다.

훗날 북한 형제들은 한국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무슨 개그냐. 조봉희 선생 발바닥에도 못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유머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긴장과 갈등이 많은 공동체의 숨통을 틔우는 은사였다.

성경 100독과 북한 선교사 임명

조봉희 선생은 성경 공부에도 열심을 냈다. 최순교 선생의 인도 아래 성경을 100번 통독했고, 사역장에서 요구하는 모든 훈련 과정을 마쳤다.

술에 매여 있던 권투선수 출신 청년은 말씀과 공동체 훈련을 통해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던 사람이 기도와 훈련으로 습관을 이기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품게 된 것이다.

파송길 열차에서 체포되다

조봉희 선생은 최순교 선생 팀과 함께 연변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연변으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었고, 결국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훈련을 마치고 북한 선교사로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가 북송된 뒤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다

북송된 조봉희 선생은 이후 다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왔고, 우리 사역 공동체를 찾아왔다. 체포와 북송을 겪고도 다시 돌아온 것은 그가 생존을 위해 큰 위험을 감수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중국으로 돌아온 조봉희 선생을 다시 받아들였다. 사역장에서 함께 말씀을 읽고 울고 웃었던 공동체는 그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였고,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피난처였다.

한국 입국과 새로운 정착

훗날 나는 조봉희 선생을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한국으로 인도했다. 한국에 입국한 뒤 그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역사적 평가 — 사랑과 훈련으로 중독을 이긴 사람

조봉희 선생의 이야기는 술 중독과 의지 부족을 단순히 꾸짖음으로 해결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순교 선생이 그를 때리며 훈계하다가 끝내 끌어안고 함께 울었을 때,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경험했다. 그 사랑은 그가 술을 끊고 스스로 금식하며 싸우게 만든 힘이 되었다.

또한 그는 힘든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능을 사용했고, 성경 100독과 훈련을 마쳐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다. 그의 삶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단호한 훈련과 함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품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