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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강석환

중국 1차 사역 / 최바울 선생 사역장 → 김권능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최바울 선생 사역장 → 김권능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주요 사역 지역
길림, 서안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서안 사역장 팀장
최종 기록
서안 사역장 운영. 이후 한국에 오지 않고 중국 조선족 교회에서 계속 사역 중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의심받으면서도 말없이 믿음을 쌓아 간 사람, 중국 땅에 남아 사역을 이어 간 선교사

말이 없는 사람

강석환 선생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바울 선생과도 거의 필요한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함께 살던 형제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왜 탈북했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바울 선생이 학생 모집을 위해 길림으로 갔을 때, 명성교회에서 추천해 주어 데려왔다. 명성교회 집사님도 그가 탈북자이며 북한에서 군관이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 주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늘 말이 없고 동료들과 섞이지 않았지만, 그의 인격은 막살던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예의가 있었고 단정했다. 사소한 생활에도 절도가 있었고 규정대로 움직였다. 분명히 북한에서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운동하러 나가서도 어딘가로 자주 전화를 했다. 결국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보위부 특무라는 의심 속에서

사역장의 형제들은 석환 선생을 북한 보위부의 비밀경찰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형제들의 감시와 외면을 받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열심히 성경만 읽고 배웠다.

석환 선생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컸고 성경을 배우려는 열정도 강했다. 빠른 속도로 이해해 나갔다. 바울 선생 팀은 자주 쫓겨 다녔는데, 그때마다 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빠져나왔다. 이 경험들 속에서 석환 선생의 성경 이해는 삶의 실체와 만나 빠르게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바울 선생 사역장이 해체되면서 석환 선생은 김권능 선생 사역장으로 갔다. 이곳에서도 의심은 계속되었다. 말이 없는 데다 형제들과 떨어져 다니기를 좋아하고 자주 전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바울 선생 팀이 유별나게 자주 공안에 쫓겼다는 사실이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권능 선생이 조용히 이야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개인 생활에 대해 물으면 석환 선생은 난감해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의심을 사게 만들었다. 결국 권능 선생은 장만식 아바이에게 조용히 감시를 지시했다. 그렇게 뒤를 따라다녀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늘 모호하고 안개 같은 사람이었다. 권능 선생은 그에게 별명을 붙였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사역자' 같다고.

“됐다! 이건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환 선생의 믿음은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권능 선생이 독감에 걸려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조금만 더 심하면 죽을 것 같았다. 일부 형제들은 이렇게 걱정했다.

“죽으면 안 되는데 권능 선생이 죽으면 우리 다 어디 가라고… 그리고 시체는 또 어떻게 처리하는데……”

최순교 선생이 마음속에 확신이 들어 권능 선생의 몸에 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모두 합심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형제들이 의식이 없는 권능 선생의 몸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던 중 순교 선생의 마음속에 낫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함부로 말했다가 틀리면 뒷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머뭇거리는 그 순간, 석환 선생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됐다! 이건 나았다!”

순교 선생이 놀랐다. 이 사역장에서 기도의 능력이 자기가 최고라고, 믿음의 확신도 자기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도 갈등하며 선포하지 못하던 찰나에 석환 선생이 먼저 선포한 것이다. 동시에 주님이 주신 확신을 의심한 것에 대한 후회도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권능 선생은 거짓말처럼 나아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통독하며 일과를 집행했다.

말씀의 은사

석환 선생은 사역장에서 공부하면서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 그가 설교할 때면 그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형제들도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말씀을 조리 있게, 잘 이해되도록 설명하고 풀어 주었다. 석환 선생이 풀어 주는 말씀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속에 믿음이 두둑이 생겨나 있었다.

파송과 서안 사역

석환 선생은 권능 선생 팀이 파송되어 나갈 때 함께 파송되었다. 자기가 살던 길림 쪽으로 파송되어 나간 석환 선생은 박예진, 조현일, 최광철, 조선족 김홍준 형제를 비롯해 5명의 탈북자들을 데리고 서안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안 사역장은 얼마 가지 못했다. 사역장이 해산된 후 석환 선생은 조선족 교회를 직접 맡아 사역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한국으로 오지 않고 중국에서 당당한 사역자로 교회를 감당하고 있다. 조선족 교회에서 그의 말씀의 능력에 감동받아 모든 신변을 보장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평가

강석환 선생은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꺼내지 않았지만, 그가 쌓아 간 믿음과 말씀의 능력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의심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성경을 읽었고, 아무도 선포하지 못하던 순간에 담대히 선포했다.

한국으로 오지 않고 중국 땅에 남아 조선족 교회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사역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임을 말해 준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사역자라는 별명은, 어쩌면 그의 삶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김무종 목사님께 보낸 편지

아래 편지는 석환 선생이 파송 후 서안 사역 중 김무종 목사님께 보낸 편지 내용이다. 편지글은 원문 그대로 보존하였다.

존경하는 김무종 목사님께

존경하는 김무종 목사님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존경하는 김무종 목사님을 모시고 파송예배를 드리던 날이 어제 같은데 2개월이 가까워 옵니다. 이렇게 또 김무종 목사님께 편지를 통하여 인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계시는 김무종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저희들이 오늘날 이렇게 수많은 사역장이 확산될 수 있은 것은 김무종 목사님과 수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의 열매인 줄 믿습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루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저는 남은 일생을 김무종 목사님같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앞으로도 계속 함께 동역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특히나 최광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시고 저와 저의 사역장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주십시오. 끝으로 존경하는 김무종 목사님의 귀하신 몸 건강과 아울러 하시는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6월

강석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