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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김광철

중국 1차 사역 / 김성근 선생 사역장 → 강규홍 선생 사역장,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김성근 선생 사역장 → 강규홍 선생 사역장,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장춘, 서안, 화산
주요 역할
조선족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서안 사역장 팀장
최종 기록
2001년 6월 서안 사역장 전원 체포 사건의 신고자로 지목됨.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음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2001년 서안 사역장 전원 체포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

김성근 선생 사역장에 들어온 조선족 형제

김광철은 중국 조선족이었다. 2기생 김성근 선생이 사역하던 중 사역장 통역을 맡았던 최빌립 형제와 갈등을 겪고 그를 내보낸 뒤, 사역장에는 중국어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김성근 선생의 어려움을 본 1기생 김권능 선생은 연변에서 사람을 수소문했고, 그 과정에서 김광철을 데려왔다. 당시에는 사역장 운영을 돕고 북한 형제들과 함께 성경을 배울 조선족 동역자로 받아들여졌다.

수감 생활과 신학교 공부

당시 사역 관계자의 회고에 따르면 김광철은 살인 사건으로 7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출소했다. 출소 후 뚜렷한 거처가 없었던 그는 연길시 신풍교회가 운영하는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신풍교회 신학교 출신의 여러 조선족 전도사들이 이미 사역장에 들어와 성실하게 훈련받고 있었기에, 김광철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신뢰를 받았다.

장춘 통독반을 신고했던 정황

사역 관계자의 회고에는 김광철이 서안 사역장에 오기 전 장춘의 탈북민 성경통독반에서 일정 기간 공부한 뒤, 그 사역장을 중국 공안에 신고하고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가 처음부터 서안 사역장을 신고할 목적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장춘에서 탈북민 통독반을 신고한 뒤 서안에도 여러 통독 사역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광철이 사역장에 들어왔을 때 그의 몸에는 여러 문신이 있었다. 북한 형제들에게서 문신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았지만, 신학교에서 공부한 조선족 형제의 몸에 문신이 있는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광철은 “선교사님, 여기 와서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사역장은 그 고백을 믿고 그를 받아들였다.

강규홍 선생 사역장에서의 훈련

김성근 선생이 사역장을 떠난 뒤 김광철은 강규홍 선생 사역장으로 옮겨 성경훈련을 받았다. 그는 약 1년 동안 통독과 공동체 훈련에 참여했다.

겉으로는 훈련을 성실하게 감당했고 다른 조선족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사역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 과정에서 사역자들은 그에게 더 많은 신뢰와 역할을 맡기기 시작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다

3기생 선생들이 화산에 올라 북한 선교사로 임명될 때 김광철도 함께 임명받았다.

그는 산을 내려오며 다른 선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이 시점까지 그는 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마친 선교사이자 동역자로 받아들여졌다.

여섯 명의 학생을 맡은 팀장

김광철에게는 이용섭 선생이 연변에서 모집해 내려보낸 여섯 명의 학생이 맡겨졌다. 그는 서안에서 한 사역장을 책임지는 팀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팀장이 되면서 그는 다른 사역장과 팀장들의 움직임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사역장의 전체 규모와 위치는 보안을 위해 개별 팀장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는 몇 달에 걸쳐 서안 사역장들의 구조와 위치를 파악해 갔다.

북한 보위부에 들어간 신고

사역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광철은 북한 보위부에 연락해 서안의 탈북민 성경통독 사역장들을 신고했다.

그는 사역장들이 남한의 후원을 받아 성경을 공부할 뿐 아니라 무장까지 한 조직이라고 과장해 알렸고, 전원을 체포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대가로 미화 2만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장 조직’이라는 거짓 정보

서안의 사역장들은 실제로는 갈 곳 없는 탈북민들이 숨어 지내며 성경을 읽고 선교훈련을 받는 공동체였다. 무기나 정치적 활동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남한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무장 조직’이라는 신고는 북한 당국의 강한 반응을 불러왔다. 당시 북한 보위부는 사역장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위치를 찾지 못해 체포에 실패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보위부와 중국 변방 부대

북한 보위부는 중국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중국 측에서는 탈북자 관련 사건을 주로 담당하던 연변 변방 부대에 체포 권한이 부여되었다.

김광철은 연변 변방 부대에도 직접 연락해 서안 사역장들을 무장 조직으로 신고했고, 체포에 협조하는 대가로 20만 위안을 요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작전을 꺼렸던 연변 변방 부대

연변 변방 부대는 처음부터 서안 체포 작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작전 지역이 관할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섬서성 서안이었고, 북한 보위부와 함께 움직이는 일도 부담스러워했다.

또한 그동안 체포된 탈북민들을 통해 서안 사역장들이 무장 조직이 아니라 성경을 배우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먼 지역까지 무장 병력을 보내 체포할 가치가 있는 사건인지 내부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이루어졌다.

계속된 독촉과 120명의 무장 병력

변방 부대가 작전을 미루자 김광철은 계속 전화를 걸어 체포를 독촉했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급 기관에 신고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연변 변방 부대는 약 120명의 무장 인원을 서안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서안 공안국의 협조를 받아 사역장들의 위치와 책임자들의 동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예배 초청과 얼굴 확인

김광철은 김성근 선생과 선교사님을 자신의 사역장으로 초청해 예배를 드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는 사역 관계자들에게는 평범한 예배 모임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회고에 따르면 변방 부대 수사 요원들은 이 기회를 통해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후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는 인물로 파악된 김성근 선생을 미행하며 다른 사역장들의 위치를 하나씩 찾아갔다.

이전 계획을 하루 앞두고 시작된 급습

위험을 느낀 선교사님은 서안의 모든 사역장을 다른 도시로 옮기기 위해 팀장 회의를 소집했다. 다음 날부터 사역장들을 서안에서 철수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파악한 변방 부대는 식당에 모여 회의하던 팀장들을 먼저 급습했다. 이후 확보한 정보를 따라 각 사역장을 차례로 덮쳐 선생들과 학생들을 체포했다.

2001년 6월 서안 사역장 전원 체포

2001년 6월 서안의 사역장들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중국 공안과 연변 변방 부대는 팀장들과 탈북민 학생들을 체포하고 숙소를 수색했다.

체포된 북한 형제들은 연변으로 호송된 뒤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성경통독 사역은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많은 선생들과 학생들의 삶이 갈라졌다.

수색 후 드러난 사실

사역장들을 샅샅이 수색한 결과 무기나 무장 조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변방 부대가 확인한 것은 탈북민들이 숨어 지내며 성경을 읽고 공부하던 생활 공간이었다.

서안 공안원들도 처음에는 위험한 조직을 체포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을 알게 된 뒤 북한 형제들을 동정했다. 일부 공안원들은 자신들이 거칠게 대한 일을 미안해하며 다시 중국에 오더라도 잡히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속한 보상금을 둘러싼 갈등

연변 변방 부대는 김광철에게 2만 위안을 지급했다. 김광철은 자신이 요구한 금액은 20만 위안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변방 부대 측은 무장 조직이라는 정보가 거짓이었고, 그 때문에 대규모 병력과 비용을 낭비했다고 반박했다. 김광철은 북한 보위부가 약속한 미화 2만 달러를 받기 위해 북한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동체에 남은 상처

이 사건으로 함께 성경을 읽고 생활했던 수많은 북한 선생들과 학생들이 체포되어 북송되었다. 돈을 목적으로 한 신고와 거짓 정보는 한 사람의 선택을 넘어 전체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를 향한 마지막 평가는 미움보다 안타까움에 가깝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던 사람이 자신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렸고, 바라던 대가마저 얻지 못한 채 공동체와 멀어졌기 때문이다.

역사적 의미와 기록의 책임

김광철 사건은 비밀 선교 현장에서 신뢰와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한 사람에게 맡겨진 역할과 정보가 공동체 전체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었고, 내부의 배신은 외부의 탄압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이 기록은 한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공동체가 사람을 신뢰하는 방식, 정보를 관리하는 원칙, 위기 징후를 분별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