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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김훈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길, 서안, 화산, 도문
주요 역할
조선족 통역·생활 지원,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서안에서 체포되어 도문으로 호송된 뒤 석방, 고향으로 돌아감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비밀 사역장의 빈자리를 묵묵히 채우고,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조선족 동역자

통역자가 사라진 정용철 선생 사역장

섬서성 서안에서 사역하던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에서 조선족 형제가 떠났다. 사역장에는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집주인이나 이웃과 작은 문제가 생겨도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밀리에 운영되는 사역장의 안전과 일상생활을 위해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조선족 동역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용섭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정용철 선생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다른 사역장들에도 조선족 형제가 부족해 당장 보낼 사람이 없었다. 조선족 통역자와 동역자는 언제나 필요한 인원보다 적었다.

연길에서 학생을 모집하던 이용섭 선생에게 연락해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쯤 뒤, 서안역으로 나가 도착하는 사람을 맞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김훈 선생이 사역장에 합류했다.

조선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김훈 선생은 조선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었을 때 말과 행동이 차분하고 점잖았다.

어떻게 서안까지 오게 되었는지 묻자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고,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의 성품과 태도를 믿고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으로 보냈다.

비밀 사역장으로 피신해 오다

훗날 이용섭 선생을 통해 김훈 선생이 누군가에게 쫓기던 상황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밀리에 운영되는 사역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피신하듯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일로 쫓기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역장 안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모든 일에 협조적이었다. 오히려 위기에 놓였던 사역장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다.

말없이 요구를 따르고 빈틈을 채우다

김훈 선생은 정용철 선생의 요구에 말없이 따랐다. 통역이 필요한 일과 집주인·이웃을 상대하는 일, 사역장 안에서 생기는 여러 생활 문제를 성실하게 처리했다.

북한 형제들이 중국 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며 훈련을 계속할 수 있도록 뒤에서 빈틈을 채웠다. 그의 도움으로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은 다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사역 중간에 들어와 말씀훈련을 받다

김훈 선생은 사역 과정의 중간에 합류했기 때문에 정확히 몇 차례 성경을 통독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사역장에 머무는 동안 통독과 기도, 말씀 암송을 비롯한 여러 훈련에 성실히 참여했다.

이미 조선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북한 형제들보다 빨랐다. 통역과 생활 지원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도 말씀을 배우며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권사님의 반찬에서 어머니의 정을 느끼다

사역장에는 선교사님의 어머니인 권사님이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김훈 선생은 얼굴을 자주 마주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을 자식처럼 돌보는 권사님의 수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권사님께 감사 편지를 보내며 그 사랑에서 친혈육의 정과 곁에 계신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짧은 편지에는 비밀 사역장에서 생활하던 학생들이 일상의 돌봄을 통해 받은 위로가 담겨 있다.

표정훈 목사님의 영성 강의를 듣다

표정훈 목사님이 사역장을 방문해 영성 강의를 진행했다. 김훈 선생도 다른 3기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으며 말씀훈련과 영성훈련에 참여했다.

강의가 끝난 후 선생들은 북한 선교사 임명예배를 위해 화산으로 향했다. 김훈 선생도 함께 산을 오르며 동역자들과 사명의 시간을 준비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다

화산에서 3기생 선생들을 북한 선교사로 세우는 임명예배가 열렸다. 김훈 선생도 북한 출신 형제들과 함께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조선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역장의 필요를 따라 서안에 들어온 그는 통역자와 생활 동역자로 섬겼고, 말씀훈련을 거쳐 복음을 전할 선교사로 세워졌다.

서안에서 함께 체포되다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대대적으로 단속될 때 김훈 선생도 다른 선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조선족 중국인이었지만 북한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며 비밀 사역에 참여했기 때문에 도문까지 호송되었다. 사역장에 들어와 조용히 감당했던 동역의 시간도 갑작스러운 체포로 중단되었다.

도문에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다

김훈 선생은 도문까지 끌려간 뒤 그곳에서 석방되었다. 중국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북송되지는 않았고, 석방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의 삶과 사역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통역자가 없어 위기에 놓였던 사역장을 안정시키고, 학생들을 돕는 동시에 자신도 말씀을 배우며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던 그의 섬김은 중국 1차 사역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권사님께 보낸 감사 편지

김훈 선생이 사역장 학생들에게 김치와 반찬을 보내 주던 권사님께 전한 감사 편지이다. 작성 당시의 표현과 문장 흐름을 살려 수록하였다.

권사님, 우리 학생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시어 마음 쓰시며 노고하시어 우리 모두가 마음 유쾌히, 몸도 건강히 하나님의 공부에 열심 하게 됩니다.

권사님이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심혈과 노고는 친 혈육의 정을 뜨겁게 느끼게 되며 모친이 곁에 계심을 느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권사님의 옥체 만강하시기 바랍니다.

학생 김훈 올림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