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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김사무엘

중국 1차 사역 / 허익두 선생 사역장 (2000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허익두 선생 사역장 (2000년)
주요 사역 지역
중국 연변 및 허익두 선생 사역장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사역장 내 막내 훈련생
최종 기록
한국 정착 후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음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어리다고 무시받은 열일곱 살, 말씀으로 자신을 증명한 막내 훈련생

북한 시절과 탈출

김사무엘 형제는 김권능 선생의 동생이다. 허익두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나갔다가 데리고 왔다. 사무엘 형제가 사역장에 처음 왔을 때 그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러나 외모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북한에서 너무 먹지 못해 키가 제때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사역장 안에서 아무도 그를 열일곱 살로 대접하지 않았다. 모두가 귀엽고 어린 막내를 대하듯 그를 대했다.

첫 만남과 최광 선교사님의 반응

최광 선교사님도 처음 사역장에서 사무엘 형제를 만났을 때, 너무 어려 보여서 이 힘든 공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나이를 듣고 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 아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린 나이에 굶주림과 탈출의 고통을 겪었을 아이를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 눈빛이었다.

나이를 인정받지 못한 어린 형제

사무엘 형제는 작지만 언제나 당돌했다. 주변에서 어린아이처럼 대할 때마다 그는 박박 우기고 다녔다.

“아 씨! 난 17살이라고! 17살이란 말이야!”

“나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난 17살이야!”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소년이 어른 대우를 받지 못해 안달해하는 모습은 사역장 안에서 웃음을 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아무도 그를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았고 귀여운 막내처럼 여겼다. 이 때문에 사무엘 형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열일곱 살임을 주장하고 다녔다.

사역장 안의 재미있는 일들

사무엘 형제 때문에 사역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자기가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소설처럼 엮어서 연설해 주었다.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얼굴에서 어른의 말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익두 선생이 시키는 모든 과제를 어김없이 꼬박꼬박 수행했다. 전체 사역장이 금식할 때에는 덩치 큰 형들이 불만을 품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퉜지만, 사무엘 형제는 말없이 앉아 착하게 금식을 이어갔다.

최광 선교사님 가족과의 에피소드

처음 최광 선교사님 가족들이 익두 선생 사역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둘째 딸 정니가 사무엘 형제를 보고 반가워했다. 낯선 중국 땅에서 친구가 없어 힘들어하던 정니는 자기 또래 아이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천진하게 다가가 장난을 치고 말을 걸었다. 사역장 식구들은 옆에서 시치미를 뚝 떼고 구경하기만 했다.

사무엘 형제는 난처했다. 한국 여자아이가 친구 하자고 다가오는데, 어른 흉내를 내며 쫓아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래처럼 놀아주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사무엘 형제가 정니에게 정식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야! 나 17살이야.”

정니는 오히려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았다. 사무엘 형제가 너무 난처해하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거들었다. 17살이 맞다고. 황당해하던 정니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그냥 도망가 버렸다.

한편 선교사님의 큰딸 영니는 당시 열세 살이었는데 덩치는 서른 살짜리 탈북자들과 비슷하게 컸다. 처음에 영니도 사무엘을 어린아이로 보고 데리고 놀려다가 정니의 말을 듣고 당황해하다가 도망가 버렸다. 사무엘 형제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닫혀 있던 마음

사무엘 형제는 사역장에 오기 전에 연변에서 한 조선족 선교사가 운영하는 탈북 고아원에서 생활했다. 그 조선족 선교사는 탈북 고아들을 돌봐 준다는 명목으로 한국과 미국 교회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

사무엘 형제는 자신들을 볼모로 돈벌이를 하는 선교사의 모습과, 외국 선교사들 앞에서의 행동과 탈북자들을 대하는 뒷모습이 너무 다른 것을 보며 선교사에 대해 마음을 닫았다. 동시에 예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음을 닫았다. 그 선교사가 했던 말이라면 감정이 올라와 무조건 거부했다.

형인 권능 선생 때문에 억지로 익두 선생의 사역장에 끌려오기는 했지만, 사역장을 또 다른 방식의 기독교 고아원이라고만 생각하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형이 이 사역장에서 큰 선생님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 일과에 열심히 참석했다.

마음이 열리다

익두 선생은 사무엘 형제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때로는 학생으로, 거의는 어린 동생처럼 대해 주었고, 때로는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익두 선생의 진심 어린 사랑에 사무엘 형제는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고, 매일 배우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듣기 시작했다.

사무엘 형제는 회심의 순간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찬송가를 즐겁게 부르기 시작했고, 하나님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형들이 논쟁할 때면 참견하지는 않았지만 옆에 앉아서 열심히 들었다. 그는 어느새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고 있었다.

신앙 고백과 세례

김의환 총장님이 허익두 선생 사역장을 방문하셨을 때, 사무엘 형제는 당당하게 자기의 신앙 고백을 했고 총장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성찬식에도 함께 참가했다.

김의환 총장님은 사무엘 형제를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저렇게 어려 보이는 사람이 성경을 100번 읽었고 설교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 깊이 감탄했다. 한국으로 갈 때 가방에 넣어 데려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진지한 반응이었다.

어리지 않음을 삶으로 증명하다

사무엘 형제는 1년 동안 익두 선생 밑에서 공부하면서 자기가 어리지 않다는 것을 삶으로 직접 증명했다. 모든 과정을 훌륭하게 배워 냈고, 모든 일과와 훈련에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따라왔다.

어른들도 힘들어서 쩔쩔매는 것을 어린 형제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또박또박 다 배워 냈고 견뎌 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다만 파송되어 사역장을 독자적으로 꾸리기에는 무리였다. 최광 선교사님은 어린 사무엘 형제를 계속 키우고 싶어 탈북 청소년 통독반을 구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아무리 봐도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사무엘 형제는 허익두 선생 팀이 파송되는 날 아버지가 있는 연변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사적 평가

김사무엘 형제는 열방빛선교회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작은 체구로 사역장에 들어왔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모든 훈련을 감당했다.

단단한 불신으로 닫혀 있던 마음이 익두 선생의 진심 어린 사랑 앞에 조금씩 열렸고, 말씀 통독 100독을 완성하며 스스로 신앙을 고백했다. 어른들도 쩔쩔매는 금식과 훈련을 묵묵히 감당한 사무엘 형제의 모습은 사역장 안에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온 사무엘 형제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정착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소록도 북성교회에 보낸 편지

아래 편지는 사무엘 형제가 파송 전에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보낸 편지 내용이다. 편지글은 원문 그대로 보존하였다.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서 또 다시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저는 중국 천독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무엘이라고 하는 17살 난 소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파출소 근방에서 신분증도 없지만 아무 두려움이 없는 것은 장로님과 성도님들의 중보기도의 응답인 줄로 믿습니다.

장로님 우리는 지금 성도님들과 장로님의 기도 응답으로 주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아무리 북한 비밀경찰들과 중국 경찰들이 날뛰어도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말씀 통독 100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 있지 않아 파송되게 됩니다.

장로님 우리 이 파송을 위하여 더 많은 기도를 하여 주십시오. 우리 사역장은 장로님과 성도님들에 대하여 소록도 북성교회는 북한 탈북자 사역의 기도 왕국이라고 합니다. 장로님 우리 이 사역을 위하여 더 많은 기도를 하여 주십시오. 오늘은 이만 펜을 놓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3월 6일

중국에서 사무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