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절과 연변 생활
김영윤 형제는 김권능 선생의 동생이다. 권능 선생이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연변의 깊은 시골 마을 의란진 종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사람이 총명해서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활 중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종이 뽑는 기술자로 일했다.
친척 중에 파출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보호받으며 월급도 매달 꼬박꼬박 받고 일반 중국인처럼 살았다. 이 때문에 여느 탈북자들처럼 생계 때문에 교회를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교회 전도사님이 가끔씩 찾아와 예수 믿으라고 하면 손을 저으며 도망가 버렸다. 교회도 싫어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싫어했다.
권능 선생이 파송되어 학생 모집을 나왔을 때 어떻게 설득되었는지, 영윤 형제는 곧바로 1기생 유기풍 선생 팀에 합류되어 사역장으로 들어왔다. 그때 그는 스물세 살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