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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이철민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화산, 한국, 캐나다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최종 기록
한국 입국 후 신학교 진학을 준비했으나 여건이 맞지 않아 캐나다로 이민함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혈기 왕성한 청년이 말씀 안에서 변화되어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이야기

김누가 선생이 연변에서 데려온 청년

이철민 선생은 김누가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었다가 학생으로 데려온 북한 청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쉽게 흥분하고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자주 건드리고 괴롭히는 일이 반복되었다. 거칠고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

마음이 약했던 김누가 선생은 결국 철민 형제를 계속 맡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철민 형제의 거친 성품과 싸움기질은 이미 다른 사역장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른 사역장 책임자들도 선뜻 그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정용철 선생에게 여러 차례 부탁한 끝에야 철민 형제가 머물며 훈련받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손양원’이라는 새 이름

정용철 선생의 사역장으로 데려가면서 철민 형제에게 ‘손양원’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손양원 목사님처럼 겸손해지고 사랑 안에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다.

철민 형제는 새 이름을 매우 불편해했고 벗어 던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사역장 형제들에게도 손양원 형제로 소개되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름이 먼저 보여 준 변화의 방향

손양원이라는 이름은 당시 철민 형제의 모습과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혈기가 앞서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던 사람이 겸손과 사랑을 상징하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새 이름은 단순한 별칭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목표가 되었다. 철민 형제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성품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말씀은 거친 사람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거칠고 강한 북한 형제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깨닫기 시작하면 오히려 빠르게 변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공격적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민 형제도 성경을 반복해 읽고 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을 괴롭히고 분노를 드러내던 모습보다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성경 백 독과 예수님 영접

철민 형제는 정용철 선생의 지도 아래 성경을 백 번 이상 통독했다. 강도 높은 통독과 기도, 말씀 암송과 공동체 훈련을 끝까지 견뎌 냈다.

말씀을 배우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했다. 혈기와 힘으로 살아가던 청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갖게 되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세워지다

모든 훈련을 마친 철민 형제는 3기생 북한 형제들과 함께 화산에 올라가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높은 화산 정상까지 성경책을 들고 올라간 그는 임명 후에도 성경책을 품에 꼭 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말씀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정체성과 새로운 사명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한국에 가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뒤 철민 선생은 한국으로 가서 반드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공동체에서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던 청년이 말씀훈련을 마치고 목회의 길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의 고백은 사역장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었다.

서안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가다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될 때 철민 선생도 함께 붙잡혔다. 그는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다만 북한 탈북자들을 직접 가르치거나 사역장을 운영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정치범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몇 달 동안 감옥생활을 한 뒤 석방되었다.

다시 중국으로 넘어와 찾아오다

북한 감옥에서 나온 철민 선생은 다시 중국으로 탈북했다. 이후 사역자들을 찾아와 연결되었다.

체포와 북송, 감옥생활을 겪고도 다시 중국으로 넘어온 그의 선택은 중국에서 받은 말씀훈련과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국 입국과 신학교 준비

철민 선생은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한국으로 인도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뒤에는 중국 사역장에서 고백했던 대로 신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생활과 여러 현실적인 사정이 맞지 않아 진학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한국에서는 신학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다.

캐나다로 떠난 북한 선교사

신학교 진학이 이루어지지 않은 뒤 철민 선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김누가 선생도 감당하기 어려워했던 혈기 왕성한 청년은 말씀 백 독을 통해 변화되어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고, 체포와 북송을 지나 한국과 캐나다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이후 삶에서도 손양원이라는 이름에 담긴 겸손과 사랑의 부르심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