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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이만식

중국 1차 사역 / 김권능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김권능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중경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성경 100독 완성 및 세례
최종 기록
바울 선생 팀 해산 후 소식 불명. 신앙을 가지고 떠난 것으로 기록됨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허약 3도로 탈북한 사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말씀이 그를 바꾸었다

허약 3도로 탈북하다

북한의 90년대 후반 식량난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중국으로 탈북한 이들 중에는 '허약'이라는 병에 걸려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허약은 장시간 필요한 영양을 흡수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장기 영양 부족 상태로, 1도에서 3도까지 나뉜다. 허약 3도에 이르면 온몸이 퉁퉁 붓고 항문이 열린다. 사람의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열리면 며칠 내로 죽는다고 했다.

만식 형제는 허약 3도에 걸린 상태로 중국으로 탈북했다. 다행히 권능 선생의 아버님을 산속에서 만나 음식을 먹고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 권능 선생이 1차 파송되었을 때 그를 따라 사역장으로 들어왔다.

담배 한 개비를 위해 난간에 서다

사역장의 훈련은 혹독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했다. 건강한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 훈련이었다. 북한 형제들은 모든 것은 다 참았지만 담배만은 죽도록 힘들어했다.

며칠 동안 담배를 피우지 못한 만식 형제가 권능 선생에게 졸랐다.

“권능 선생님 앞으로 차차 담배를 끊겠습니다. 담배 조금만 사 주세요. 예? 조금만요.”

“지금 끊으세요.”

권능 선생이 칼처럼 잘라 말하자 만식 형제가 화를 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야 인마! 담배 내 놔. 니가 뭔데 사람 이렇게 힘들게 해. 엉? 담배 내 놔!”

권능 선생이 화도 내지 않고 무시해 버리자 만식 형제는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담배 줘! 담배 줘! 난 담배를 피워야 한단 말이야! 나 담배 피고 싶어 죽어 버리고 싶단 말이야!”

통독이 중단될 지경이었다. 권능 선생이 욕을 해 댔고, 옆집 신고를 걱정한 형제들이 한마디씩 했다. 깡패 출신 정모세 형제가 꽥 소리를 지르자 만식 형제는 갑자기 베란다로 뛰쳐나가 난간 위에 올라섰다.

“나 담배 안 주면 죽어 버릴 거야! 담배 사 줘. 이 개새끼야! 담배 달란 말이야!”

조금만 건드리면 떨어질 자세라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권능 선생이 회수해 두었던 담배 한 개비를 쳐들자, 만식 형제는 난간에서 훌쩍 뛰어내려 담배를 낚아챘다. 만식 형제는 울면서 담배를 피웠다.

바울 선생 팀으로, 그리고 장강에서

권능 선생이 지쳐 사역을 포기하고 연변으로 올라가자, 팀장이 교체되면서 만식 형제는 최바울 선생 사역장으로 옮겨졌다. 중경으로 가는 며칠간의 열차 여정 내내 만식 형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묵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번은 바울 선생 팀 형제들과 함께 장강 유람을 갔다. 줄곧 말없이 꼬리만 따라오던 만식 형제는 공기 방석 배를 타자 아이들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배의 제일 앞머리에 서서 소리를 질러댔다.

“만세! 만세! 만만세!”

배에 탄 모든 여행객들의 시선이 쏠려도 개의치 않고 흥분해서 뛰어다녔다. 가서 물었다.

“만식 형제, 뭐가 그렇게 좋아요?”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김정일이도 타 보지 못한 장강 유람선을 타보았으니 말입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바울 선생도 이만식 형제에게는 큰 기대를 접었다. 선교사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예수님을 믿고 신앙만 가져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통독 시간에도 예배 시간에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배우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형제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뻐해도 만식 형제는 소가 닭을 쳐다보듯 덤덤했다.

그러나 말씀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만식 형제도 계속 통독하고 말씀을 암송하면서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워낙 표현이 없는 사람인 데다 형제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만식 형제가 떠나온 팀 형제들에게 전해 달라며 편지를 써서 건넸다. 권능 선생과 처음 성경 공부를 시작했던 그 형제들이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편지를 읽은 북한 형제들이 놀랐다. 사람이 변했다고, 저런 사람도 결국은 변했다고.

만식 형제는 바울 선생의 지도 아래 성경 100독을 읽었고, 김의환 총장님이 오셨을 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신앙을 가지고 떠나다

사역의 마지막 단계에서 바울 선생은 계속되는 공안들의 추격에 심신이 지쳐 사역을 포기했다. 대부분의 형제들은 팀장 없이 사역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만식 형제는 바울 선생을 따라 팀을 떠났다. 그 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신앙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

이만식 선생은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예상 밖의 변화를 보여 준 인물이다. 허약 3도로 탈북하여 담배 한 개비 때문에 베란다 난간에 올라서던 사람이, 조용히 성경을 읽고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였다.

말씀은 기대받는 사람만 바꾸지 않는다. 가장 거칠고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도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이만식 선생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권능 선생 팀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

아래 편지는 만식 형제가 바울 선생 팀으로 옮긴 후 권능 선생 팀 형제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 편지 내용이다. 편지글은 원문 그대로 보존하였다.

그리운 형제들에게 전합니다.

형제님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변모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형제님들을 그리며 여기에 있는 저는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형제님 여러분 여기에 있는 저희들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모든 진리를 찾고 말씀에 더욱 순종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늘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오직 우상숭배 속에서 살아왔으며 할 말도 하지 못하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오직 말하는 짐승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여 주시고 종으로 자녀로 불러 주심을 정말 감사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서로 형제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끝까지 동역하는 삶을 살아 나갈 것을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언제나 북한의 복음과 세계 복음의 앞장에서 우리 서로 어깨 걸고 같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끝으로 형제 여러분들의 학습과 생활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펜을 놓으려고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9년 9월 7일

이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