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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중국 2차 사역

루디아

중국 2차 사역 / 자매 사역장

소속 / 사역기수
중국 2차 사역 / 자매 사역장
주요 사역 지역
북한 탄광·농장, 중국 목단강·청도, 한국 천안
주요 역할
성경훈련생, 탈북 자매
최종 기록
한국 천안 정착 후 교회에서 신앙생활. 중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꿈을 품음

중국 2차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 뒤, 말씀 안에서 새로운 삶의 꿈을 찾은 사람

탄광과 농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다

루디아 자매는 북한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했다. 힘이 세고 성격이 활달했으며, 일을 많이 하면 그만큼 돈과 양식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지만 탄광에서는 먹을 것도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생활을 이어 갈 수 없게 되자 농장으로 옮겨 다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농장에서는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을 감당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대자보에 사진이 실리고 대대적으로 선전될 정도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뿐이었다.

일 년 노동의 대가로 받은 옥수수 한 자루

루디아 자매는 일 년 동안 받은 점수를 계산하며 가을에는 세 사람 몫의 양식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받은 것은 알곡으로 털면 20킬로그램 남짓한 옥수수 이삭 한 자루 정도였다. 그것을 먹으며 다시 한 해 동안 일하라는 뜻이었다.

탄광이나 공장 노동자들은 그 정도의 배급조차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루디아 자매에게는 평생 믿었던 원칙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멍함과 깊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노를 겉으로 표현하면 정치범으로 몰릴 수 있었기에 마음속에 눌러 담았다. 이 나라에서 계속 살다가는 굶어 죽거나 분노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중국으로 탈북했다.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다시 한국행을 꿈꾸다

중국에 온 루디아 자매는 흑룡강성 목단강에 사는 조선족 남성을 만나 함께 살며 딸을 낳았다.

이후 산둥성 청도로 이주해 남편과 함께 돈을 벌었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루디아 자매는 어린 딸을 데리고 석자실 선생과 함께 사역장을 찾아왔다. 일 년 동안 성경을 배우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믿고 훈련을 시작했다.

아이의 장난과 한마디가 만든 문화 충돌

사역장에는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나 책도 없었고 함께 놀 친구도 없었다. 탈북민 신분이어서 유치원에 보낼 수도 없었다.

어른들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성경을 공부하자 심심해진 아이는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가 사람들의 발을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공부에 집중하던 자매들은 여러 번 주의를 주었고, 한 사람이 장난을 멈추게 하려고 아이를 꼬집었다.

루디아 자매는 힘들게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그때 한국에서 온 한 자매가 아이의 볼을 만지며 친근한 뜻으로 ‘가시나’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장난스럽고 친근한 표현일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 그 말은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상스러운 욕으로 받아들여졌다. 루디아 자매는 자신의 딸과 자신이 멸시당했다고 느끼며 크게 울고 화를 낸 뒤 사역장을 떠났다.

성경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이었다. 남은 사역자들도 작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힘들어했다.

작은 도움을 계기로 다시 돌아오다

몇 달 뒤 석자실 선생을 통해 루디아 자매가 아이를 돌보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역자들은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1천 위안을 보냈다. 루디아 자매는 자신을 잊지 않고 도와준 마음에 감사해 다시 사역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는 이전보다 성실하게 성경을 배우고 공동체 생활에 참여했다. 문화적 오해로 관계가 끊어졌지만, 조건 없는 관심과 돌봄이 다시 연결되는 길을 만들었다.

다른 자매들을 따라 한국에 입국하다

몇 달 뒤 석자실 선생과 찬양 자매가 먼저 한국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한국에 도착하는 모습을 본 다른 자매들도 각자 길을 찾아 한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루디아 자매도 이 흐름 속에서 한국에 입국했다. 중국에서 긴 시간 생존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뒤, 새로운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천안 정착과 중국 선교의 꿈

루디아 자매는 한국 천안에 정착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딸은 기록 당시 중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다시 중국으로 가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루디아 자매의 이야기는 열심히 일하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문화 차이와 상처로 공동체를 떠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와 말씀을 배우고 자신이 살았던 중국 땅을 섬기려는 소망을 갖게 된 여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