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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2기 · 중국 1차 사역

박다윗

중국 1차 사역 / 김권능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김권능 선생 사역장 → 최바울 선생 사역장 (1999~2001년)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연길, 제남, 정주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제남·정주 사역장 운영
최종 기록
한국 입국 후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어 외국으로 나간 것으로 전해짐

2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순교자의 동생, 깡패에서 선교사로 — 총을 버리고 말씀을 붙든 사람

탈북과 연길 깡패 생활

박다윗 형제는 순교자 박요한 선생의 동생이다. 1998년 여름 형 박요한 선생, 허익두 선생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세 사람은 중국에 넘어온 후 늘 의지하며 함께 다녔다. 연변 의란진의 돌가루 가공 공장에서 일하다가 형 요한 선생과 익두 선생은 성경 공부를 하러 떠났고, 다윗 형제는 연길의 깡패가 되었다.

연길 깡패에는 이미 김권위 선생, 정모세 선생이 활동하고 있었다. 다윗 형제는 같은 탈북자인 그들과 함께 깡패 생활을 했다. 계산에 밝았던 그는 다른 사람들이 다 마약을 할 때에도 자신은 하지 않았다.

연길 깡패들은 탈북자들을 철저히 이용했다. 공안에 잡히면 가장 큰 벌을 받는 일들은 다 탈북자들에게 시켰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일, 마약을 거래하는 일이 모두 탈북자들의 몫이었다. 깡패 두목은 다윗 형제에게 총을 맡겼다. 중국에서 사적 총기 소지는 불법이었고, 깡패가 총을 가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공안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다. 그 총을 맡겼다는 것은 두목의 대단한 신임이었다.

총을 쏘지 못한 순간

1기생 최바울 선생이 다윗 형제를 찾아와 말했다.

“너 형도 이제는 예수님 믿고 선교사가 되었다. 너도 공부하러 가자.”

다윗 형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깡패로 성공할 거요. 나에게는 총이 있소.”

바울 선생이 말했다.

“너 총을 거둬라. 너 총을 들고 춤을 추면 결국 총에 망한다. 이건 예수님의 말씀이다.”

다윗 형제는 바울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깡패 조직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후 깡패들끼리 큰 싸움이 붙었다. 다윗 형제가 속한 쪽이 밀리기 시작하자 두목이 말했다.

“제일 앞에 있는 애들 몇 놈 쏴라.”

그때에야 다윗 형제는 자기에게 총을 맡긴 의도를 알았다. 가장 위험하고,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역할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계산에 밝은 그는 총을 쏘지 못했다. 싸움의 현장에서 두목의 말을 거역한 것은 사실상 죽음에 가까운 보복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길로 다윗 형제는 깡패를 떠나 사역장으로 도망 왔다.

사역장에서 행패를 부리다, 귀신이 들리다

그때 형 박요한 선생은 이미 순교한 뒤였다. 다윗 형제는 김권능 선생 팀에 합류되어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형이 헌신하고 순교의 길을 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형이 죽은 분풀이를 한다며 공부를 하지 않고 행패를 부리고 심술만 부렸다.

결국 권능 선생의 사역을 방해하고 온갖 행패만 부리던 다윗 형제는 귀신이 들려 버렸다. 귀신에게서 가까스로 해방된 다윗 형제는 정신을 차렸다. 이 일로 권능 선생의 말을 듣지 않던 모든 북한 형제들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중국 공안들보다 깡패들보다 더 무서운, 보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했다. 모두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울 선생 팀에서 변화되다

최광 선교사님은 다윗 형제를 최바울 선생 사역장으로 데려갔다. 힘세고 싸움 잘한다고 우쭐거리는 사람이라 바울 선생이 맡아 주면 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바울 선생 사역장에 가서부터 다윗 형제는 열심히, 진지하게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깡패를 하던 김권위, 정모세, 박다윗 형제는 모두 성경을 배우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영접했다. 훗날 셋 다 북한 선교사가 되기로 맹세하고 선생으로 활동했다. 김의환 총장님이 오셔서 모든 북한 선생들을 호텔에 초청해 식사를 할 때 세 사람은 다시 만났다. 깡패가 아닌 주 안에서 다시 만난 세 사람은 많이 반가워했다.

다윗 형제는 바울 선생의 지도 아래 성경 100독을 읽었고 모든 선교사 훈련을 마쳤다. 김의환 총장님께 세례를 받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파송과 두 번의 사역 해체

박다윗 선생은 연변으로 파송되어 김만규, 김용철, 스데반, 최게바, 최요한, 조선족 이덕희 외 1명의 탈북자들을 성공적으로 모집해 제남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가 데려온 김용철이 북한 보위부 요원이었다. 제남시 산동대학 운동장에서 김성근 선생 팀 형제들과 서로 만났다가 신분이 탄로 났고, 이 일로 다윗 선생의 사역은 시작하기 바쁘게 해체되었다.

다윗 선생은 다시 연길로 올라가 북한 형제들을 모집해 정주로 내려와 사역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얼마 하지 못하고 해산되었고 학생들은 김성근 선생 팀과 정용철 선생 팀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다윗 선생은 연길로 올라갔다가 훗날 한국으로 입국했다.

한국 입국 이후

한국으로 입국한 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어 외국으로 나갔다고 한다.

역사적 평가

박다윗 선생은 중국 사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을 보여 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순교자 박요한 선생의 동생으로, 형이 헌신의 길을 갈 때 그는 총을 든 깡패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총을 쏘지 않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그를 사역장으로 이끌었다.

사역장에서도 행패와 귀신 들림이라는 극단적인 시간을 거쳤지만, 결국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깡패 출신 세 사람이 함께 선교사로 세워진 것은 사역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총을 버리고 말씀을 붙든 사람, 그것이 박다윗 선생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