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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신재록

중국 1차 사역 / 최순교 선생 사역장 (2000~2001년)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최순교 선생 사역장 (2000~2001년)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연길·도문·왕청
주요 역할
조선족 동역자,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사역장 안전·운영 지원
최종 기록
중국 조선족 형제들과 함께 서안과 연변 지역의 사역을 계속 이어감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지식에서 기도로, 갈등을 넘어 공동체를 세운 조선족 동역자

연변에서 찾아온 조선족 신학생

신재록 선생은 중국 조선족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며 북한 형제들을 훈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찾아왔다. 그는 연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대화를 나누어 보니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으며 말씀도 잘 전했다.

나는 재록 선생이 훈련과 공동체 생활 속에서 더 깊이 세워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최순교 선생의 사역장으로 보냈다. 그러나 신학을 하지 않은 탈북민 지도자 밑에서 성경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식은 있었지만 낮아짐은 배우지 못했다

재록 선생은 최순교 선생이 말할 때마다 목을 뒤로 젖힌 채 불성실하게 대답했고, 통독 시간에도 일이 있다며 자주 밖으로 나갔다. 통독이 모두 끝난 뒤에야 돌아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최순교 선생은 그의 태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를 위해 더욱 기도했다.

주의 종은 성경 지식만으로 세워지는 사람이 아니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형제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재록 선생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말씀이 인격이 되기까지 자신이 깎이는 시간이었다.

북한 형제들과 충돌하다

재록 선생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계속되자 북한 형제들의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형제들은 조금 배웠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업신여긴다며 그를 내보내자고 요구했다. 최순교 선생은 우선 그를 위해 기도하자며 형제들을 달랬지만, 재록 선생은 좀처럼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통독이 끝난 뒤 들어온 재록 선생을 최효선 형제가 붙잡고 거칠게 항의했다. 주위에서 말려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재록 선생은 큰 상처를 입고 방에 틀어박혔다. 그는 밖으로도 나오지 않았고 통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긴장은 더욱 깊어졌다.

시험을 품고 기도한 최순교 선생

북한 형제들은 사역장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재록 선생을 내보내야 한다고 정식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최순교 선생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시험이자 훈련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재록 선생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이 고비를 넘겨 보자고 권했다.

결국 감정을 참지 못한 형제들이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신소광 선생과 김기철 선생만 남았다. 최순교 선생은 자신의 권위나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벽을 향해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미움이 씻기고 공동체가 회복되다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방에 틀어박혀 있던 재록 선생이 먼저 나왔고, 밖으로 뛰쳐나갔던 형제들도 하나둘씩 돌아왔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끌어안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날 이후 서로에게 쌓여 있던 감정이 깨끗이 씻긴 것처럼 사라졌다. 주님은 죄만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쌓인 미움과 상처까지 씻어 내시는 분임을 모두가 경험했다. 갈등으로 무너질 뻔했던 공동체는 기도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되다

그 후 재록 선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는 최순교 선생을 성심껏 섬기기 시작했고 북한 형제들을 먼저 돌보았다. 전에 보였던 교만과 거리감은 사라졌고, 공동체 안에서 신뢰받는 동역자로 세워졌다.

나 역시 재록 선생을 신뢰하게 되어 많은 일을 함께 맡겼다. 그는 조선족으로서 중국 사회와 언어, 행정 환경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공안이나 중국인들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순교 선생 사역장뿐 아니라 전체 사역장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다.

편지에 담긴 회개와 기도의 결단

파송을 앞둔 재록 선생은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처음에는 이 사역이 한국 성도들의 물질적 헌신으로만 이루어지는 줄 알았지만, 함께 동역하며 수많은 이들의 기도가 사역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특별히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음을 회개하고, 기도하는 주의 종이 되기 위해 2001년 2월 1일부터 20일 금식을 계획했다. 기도의 종이 되는 일, 파송 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만나는 일, 부모와 가정,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세상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편지 원문은 문서 뒤의 부록에 따로 수록했다.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다

재록 선생은 최순교 선생 팀의 형제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며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학 지식을 앞세우던 사람에서 공동체를 섬기고 기도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임명 기념사진에는 재록 선생과 최순교 선생 팀의 형제들이 함께 서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수료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말씀과 기도 안에서 하나의 사명을 품게 된 순간이었다.

연변에서 사람을 모아 서안 사역을 시작하다

최순교 선생 팀이 파송될 때 재록 선생도 함께 연변으로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서 북한 탈북자 박오림, 이효성, 전장오, 정국철, 최용운, 유에녹, 최노아 형제를 모집했다.

재록 선생은 이들을 데리고 다시 서안으로 내려와 새로운 사역장을 시작했다. 과거에는 공동체 훈련을 피하려 했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모으고, 말씀훈련 공동체를 책임지는 지도자로 서게 된 것이다.

대대적인 체포 속에서 살아남은 사역장

서안의 사역장들이 한꺼번에 공안에 적발되었을 때, 유독 재록 선생의 사역장만 체포를 피했다. 당시 서안에는 남자 사역장이 아홉 곳 있었지만 중국 공안은 여덟 곳만 파악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재록 선생과 팀 형제들은 체포되지 않고 연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사역장이 보존된 일은 이후 흩어진 형제들을 다시 수습하고 사역의 맥을 이어 가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남겨진 사역을 수습하고 다시 세우다

내가 중국에서 추방된 뒤, 통장에는 상해한인교회에서 헌금한 500만 원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 돈을 재록 선생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사역장이 무너지고 많은 형제들이 체포된 상황에서 그가 남은 사역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록 선생은 이 헌금으로 체포되었다가 돌아오는 북한 형제들을 돌보고 다시 모았다. 그리고 연길과 도문, 왕청에 새로운 사역장들을 세우며 무너진 현장을 하나씩 복구해 나갔다.

중국에 남아 사역을 이어가다

중국에 있던 북한 형제들을 모두 한국으로 인도한 뒤에도 재록 선생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서안에서 공부하던 중국 조선족 형제들을 중심으로 다시 공동체를 꾸리고 성경훈련 사역을 이어 갔다.

탈북민을 직접 훈련하던 초기 사역에서 조선족 동역자들을 세우는 단계로 사역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고 그들을 다시 사역의 자리로 보내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역사적 평가

신재록 선생의 이야기는 지식이 어떻게 인격과 사명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 준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학 지식을 앞세워 탈북민 지도자와 공동체를 낮게 보았지만, 갈등과 기도, 용서의 과정을 지나며 섬기는 동역자로 변화되었다.

그는 조선족이라는 자신의 배경을 사역의 통로로 사용해 중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역장들의 안전을 지켰다. 대대적인 체포 이후에는 남겨진 헌금을 책임 있게 관리하며 흩어진 형제들을 수습하고 새로운 사역장을 세웠다. 중국 1차 사역이 단절되지 않고 다시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헌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보낸 편지

아래 편지는 신재록 선생이 파송을 앞두고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께 보낸 편지이다. 전달받은 원문을 기준으로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만 정리하였다.

존경하는 남효선 장로님에게 드리는 편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소록도 북성교회와 장로님께 영원히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재록입니다. 남 장로님께 안부 올립니다. 남 장로님의 신체 건강 때문에 많이 근심했습니다. 우리 최 선교사님을 통하여 장로님의 오토바이 사건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쯤은 건강이 어떠하신지 참 궁금합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지도 이젠 어언 다섯 달째 됩니다. 처음 왔을 땐 그저 이 사역이 한국의 고마운 분들의 헌신으로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역을 동역하면서 정말 이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이 사역을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사 물질로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써 이루어 감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이 사역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만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계속적으로 채워 주는 것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참으로 소록도 교회의 밤낮 없는 기도가 큰 힘을 이루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며 내 자신의 신앙을 비추어 볼 때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기도가 너무 부족했던 내 신앙을 회개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에 따르는 기도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특별히 소록도에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저를 기도하는 주님의 종으로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주의 일을 그 누구도 의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말입니다. 또 이것을 위하여 제가 2월 1일부터 20일 동안 금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식의 주요 기도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도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2. 파송되어 정확한 주의 택한 종들을 모아 주옵소서. 이제는 한 달 내지 두 달이면 파송됩니다.

3. 저의 가정과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옵소서.

4. 세상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일들이 정리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상 네 가지는 금식을 위한 기도 제목입니다. 소록도 교회에서 제가 금식하는 동안 시험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는 동시에, 이 기도 제목들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소록도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과 매일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문안드립니다. 새해에도 주님과 더 가까운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소록도 교회 모든 하나님의 백성 위에 새해 인사를 올리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중국에서 신재록 올림

2001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