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 선생이 연 4기 사역의 문
김기철 선생은 연변으로 파송된 뒤 김명철, 김민철, 김성도, 성철남, 허영남 형제를 모집해 서안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함께 생활하며 성경훈련을 시작하면서 중국 1차 사역의 4기 과정이 열렸다.
기철 선생에게는 이미 성경훈련을 받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된 경험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학생들을 맡아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처음이었다.
4기 · 중국 1차 사역
중국 1차 사역 / 4기 사역
4기 · 사역장 기록
폭력과 반항으로 무너진 공동체가 용서와 순종으로 변화된 4기 사역의 시작
김기철 선생은 연변으로 파송된 뒤 김명철, 김민철, 김성도, 성철남, 허영남 형제를 모집해 서안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함께 생활하며 성경훈련을 시작하면서 중국 1차 사역의 4기 과정이 열렸다.
기철 선생에게는 이미 성경훈련을 받고 북한 선교사로 임명된 경험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학생들을 맡아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처음이었다.
김기철 선생은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고 성경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것과 상처 많고 거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학생들의 성격과 필요를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리더십의 한계에 부딪혔다.
사람은 배우지 못하면 자신이 보고 경험한 방식대로 행동하기 쉽다. 기철 선생이 북한에서 경험한 지도 방식은 명령하고 고함을 지르며 무조건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욕을 하고 위협하며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본래 선비 같은 차분한 성품이었기에 억지로 만든 무서운 표정과 큰소리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권위도 주지 못했다.
기철 선생이 데려온 학생들은 대부분 인민군에서 10년 이상 복무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김명철 형제는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힘과 전투 경험에서 다른 형제들을 압도했다.
학생들은 기철 선생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듣지 않으려면 모두 사역장에서 나가라고 하자, 오히려 여러 명이 기철 선생을 붙잡아 사역비를 빼앗고 밖으로 쫓아냈다.
김기철 선생은 길가에 앉은 채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던 김성근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생들이 술과 담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위협하고, 사역비까지 빼앗아 쫓아냈다고 호소했다.
그는 분노와 수치심에 휩싸여 힘센 형제들을 데려와 학생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성철남 형제가 자신을 ‘김정일 장군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비난한 것에 크게 격분했다.
학생들은 사역장에 함께 있던 조선족 형제에게도 기철 선생을 따라갈 것인지 자신들과 남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위협했다. 조선족 형제는 두려움을 느끼며 결국 사역장을 빠져나왔다.
김성근 선생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기철 선생과 조선족 형제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힘센 학생들을 데려오지 않고 혼자 온 김성근 선생을 보며 불안해했다.
조선족 형제는 학생들이 김성근 선생이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가 오면 붙잡아 돈을 빼앗고 도망치려 한다고 전했다.
기철 선생은 다른 사역장 형제들을 불러 학생들을 제압하자고 거듭 요구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작은 충돌이 전체 사역장의 폭력 사태로 번질 수 있었다.
북한 형제들에게 김정일 정권은 가족과 고향을 잃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정일 장군을 배신한 자’라는 비난은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이 말이 다른 사역장에 알려지면 수많은 북한 형제들이 복수하겠다며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한국에 있던 선교사님은 김성근 선생에게 이 사실을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성근 선생은 기철 선생과 조선족 형제에게 다른 사역장의 힘을 빌려 학생들을 제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곳은 깡패 집단이 아니라 북한 선교사를 세우는 사역장이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길가에 서서 손을 잡고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뒤에도 뚜렷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폭력으로 맞서지 않겠다는 방향만은 분명해졌다.
김성근 선생은 다니엘이 사자굴에도 들어갔는데 자신들은 그래도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라며 기철 선생과 함께 사역장으로 향했다. 조선족 형제는 두려움 때문에 따라가지 못했다.
사역장 안은 난장판이었다. 담배 연기가 방마다 가득했고 술병이 굴러다녔다. 학생들은 술에 취한 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김성근 선생과 김기철 선생은 학생들을 꾸짖거나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통독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김성근 선생은 조용히 기도했다. 학생들은 호통과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한 사람씩 통독실로 들어왔다.
김성근 선생이 눈을 떴을 때에는 모든 학생이 통독실에 앉아 있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고 작은 불씨만 튀어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이 흘렀다.
그는 억지로 웃으며 앉은 김에 예배를 드리자고 말했다. 찬송과 대표기도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김성근 선생은 자신도 처음 사역장에 들어왔을 때 선생을 때려눕히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연변으로 돌아가도 반겨 줄 가족이나 집이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의 대도시에서 혼자 살아갈 수도 없어 이를 악물고 견뎠다고 했다. 학생들의 분노와 답답함을 정죄하기보다 먼저 이해한다고 말해 주었다.
김성근 선생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갈매기가 자연의 저항을 이겨 내고 더 높이 날아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뒤, 다른 갈매기들도 그 세계로 이끌어 가는 내용이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사역장을 덮고 있던 살벌한 기운이 조금씩 걷혔다. 학생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적대적인 눈빛은 서서히 누그러졌다.
이야기를 마친 김성근 선생과 김기철 선생은 바닥에 널린 담배꽁초와 술병을 치우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청소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았고 잘못을 추궁하지도 않았다.
잠시 뒤 학생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사역장을 정리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조선족 형제도 분위기를 살피며 조용히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김성근 선생은 평소와 같이 학생들을 깨웠다. 아침 6시 기도, 식사, 성경통독, 말씀 암송과 큐티가 다시 시작되었다.
학생들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해진 일과를 따랐다. 김성근 선생은 빼앗긴 사역비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김기철 선생에게 새로운 사역비를 지급한 뒤 사역장을 떠났다.
사건을 주도했던 김명철 형제는 김성근 선생의 행동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다른 사역장의 힘센 형제들이 보복하러 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성근 선생은 위험을 알고도 혼자 들어왔고, 욕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마지막까지 빼앗긴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김명철 형제가 경험한 세상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되갚는 세계였다. 한 번 공격을 받으면 더 강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온순하면서도 공동체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김성근 선생의 모습을 보며, 폭력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김명철 형제는 훗날 김성근 선생에게 어느 군대에서 복무했고,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김성근 선생은 군대에 가 본 적도 없고 사람을 다뤄 본 경험도 없다고 답했다. 다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사람을 대하신 방식대로 행동하려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철 형제는 성경 어디에 예수님이 나오는지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김성근 선생은 네 복음서와 예수님의 삶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후 김명철 형제는 통독 시간 외에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제사장들은 왜 예수님을 미워했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김명철 형제는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가 김성근 선생이나 선교사님이 방문하면 물었다. 성경을 읽다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눈물을 감추려 코를 킁킁거렸다. 이전까지 폭력을 앞세우던 사람이 기철 선생의 일을 말없이 돕기 시작했다.
김명철 형제는 자신이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며 이제부터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역장의 규정을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지켰고, 훈련을 거부하거나 김기철 선생을 힘들게 하는 형제들을 타일렀다. 그가 한마디 하면 다른 학생들도 조용히 따랐다.
김명철 형제의 변화는 사역장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다른 형제들도 성경통독과 공동체 규칙을 성실히 따르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빠르게 안정되었다.
선생을 쫓아내고 사역비를 빼앗았던 사역장은 한 달 만에 모범 사역장으로 변화했다. 강한 처벌이 아니라 이해와 용서, 말씀의 실천이 공동체를 새롭게 한 것이다.
김성근 선생과 김기철 선생이 계획적으로 훌륭한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폭력으로 보복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했다.
한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내어 주라는 말씀을 작은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 가장 험악했던 형제들이 변화되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 후 김기철 선생 사역장도 서안의 다른 사역장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사역을 통해 변화되고 있던 공동체는 갑작스럽게 해체되었다.
김기철 선생은 북한으로 북송되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고, 학생들은 북한 각지로 흩어졌다. 이후 이들의 구체적인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기철 선생 사역장은 지도자의 미숙함과 학생들의 폭력으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던 공동체였다. 그러나 보복을 포기하고 말씀을 선택한 작은 순종이 가장 강한 사람의 마음부터 움직였다.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든, 이들은 중국의 한 사역장에서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장면을 경험했다. 김기철 선생 사역장의 이야기는 사람을 바꾸는 힘이 강압과 처벌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에 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