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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장 이야기

4기 · 중국 1차 사역

신소광 선생 사역장

중국 1차 사역 / 4기 사역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4기 사역
주요 사역 지역
연길, 서안, 북한, 한국
주요 인물
신소광, 이용섭, 최순교, 김의환, 학생 9명
최종 기록
서안에서 사역 시작 후 전원 체포. 신소광 선생은 이후 한국에 입국했으며 학생들의 북송을 오래 안타까워함

4기 · 사역장 기록

사역장의 기록

북송에서 살아 돌아와 아홉 명의 학생을 맡았지만, 다시 체포로 무너진 사역장

학생을 모집하기도 전에 체포된 선교사

연변으로 파송된 신소광 선생은 학생을 모집해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연길의 숙소에서 최순교 선생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두 선생은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북한에서 청년단 간부로 활동했던 사람이 탈북과 기독교 관련 사건으로 붙잡혔기에, 함께 사역하던 선생들은 그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포기했지만 계속된 기도

체포 소식을 들은 북한 선생들 대부분은 신소광 선생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치범수용소나 장기 구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역자들은 최순교 선생과 신소광 선생이 살아 돌아오도록 계속 기도했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기를 구했다.

몇 달 후 살아 돌아오다

몇 달이 지난 뒤 신소광 선생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여겼던 사람이 나타나자 공동체 전체가 놀랐다.

일부 북한 선생들은 북한 보위부가 사역장을 찾기 위해 신소광 선생을 역으로 보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를 서안으로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심보다 먼저였던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주변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사역자에게는 살아 돌아온 신소광 선생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함께 말씀을 배우고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던 사람을 의심만으로 밀어낼 수 없었다. 그의 귀환은 오랫동안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용섭 선생이 맡긴 아홉 명의 학생

연길에서 학생을 모집하던 이용섭 선생은 신소광 선생에게 아홉 명의 북한 형제를 맡겨 서안으로 내려보냈다.

북한 구금으로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신소광 선생은 다시 사역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북송과 감옥 생활을 경험한 뒤에도 복음을 위한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안역에서 흘린 공동체의 눈물

신소광 선생이 학생들과 서안역에 도착하자 여러 북한 선생들이 함께 마중을 나갔다. 그는 오랜 구금과 영양 부족으로 온몸이 약해져 있었다.

서로를 보는 순간 신소광 선생과 사역자들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함께 나온 북한 선생들도 그의 귀환을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속에서 그동안 품었던 의심도 사라졌다.

최순교 선생의 귀환까지 바라보다

신소광 선생이 살아 돌아온 일은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선생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며 감사했다.

동시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최순교 선생도 반드시 살려 보내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소광 선생의 귀환은 한 사람의 생환을 넘어 공동체의 믿음을 다시 일으키는 사건이 되었다.

김의환 총장에게 전한 북한 감옥의 증언

마침 김의환 총장이 서안의 사역장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신소광 선생이 북한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김 총장은 직접 만나야 한다며 곧바로 찾아갔다.

신소광 선생은 북한으로 북송된 뒤 감옥에서 겪은 일과 반기독교적 현실을 자세히 간증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 총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온 것이 놀랍고 앞으로 더 단단한 일꾼으로 준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서안 외곽에 마련한 새로운 사역장

신소광 선생은 서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집을 구하고 아홉 명의 학생과 함께 생활할 사역장을 마련했다.

그는 책상과 의자, 생활용품, 공책과 연필, 지우개까지 사역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뛰어다니며 꼼꼼히 준비했다. 다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욕이 컸다.

학생들을 맡고서야 깨달은 지도자의 자리

사역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신소광 선생은 자신이 학생 시절 최순교 선생을 힘들게 했던 모습이 새로운 학생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학생들이 반항하고 규칙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과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관계와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원리임을 경험했다.

돈을 회수해도 사라지지 않은 술과 담배

사역을 시작할 때 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술과 담배를 사지 못하도록 돈을 모두 보관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사역장 안에는 어김없이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밥상에는 마시다 남은 술병이 놓여 있었고, 씻지 않은 그릇이 쌓였다. 정해진 생활 규칙보다 자신들이 익숙했던 방식대로 살려는 모습이 계속되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리는 공동체

나이가 많고 힘이 센 학생들은 어린 형제들을 함부로 대했고 때리기도 했다. 약한 학생들이 울어도 폭력적인 위계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에서 생존을 위해 몸에 익힌 힘의 질서가 사역장 안에서도 반복되었다. 신소광 선생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동시에 공동체의 폭력과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야 했다.

한 사람씩 만나 달래고 바로잡다

신소광 선생은 학생들을 한꺼번에 억누르기보다 한 사람씩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잘못을 지적하고 타이르며 생활을 바로잡도록 권면했다.

과거 자신이 지도자를 힘들게 했던 일을 떠올리며 학생들의 반항과 혼란을 이해하려 했다. 처음 사역을 맡은 사람으로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쉽게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충분히 말씀을 배우기 전에 끝난 사역

신소광 선생 사역장은 시작된 지 오래되지 않아 2001년 6월 서안 사역장 전원 체포 사건을 맞았다.

신소광 선생과 아홉 명의 학생은 다른 사역장 구성원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학생들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신앙을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북송된 학생들

체포된 북한 학생들은 연변으로 호송된 뒤 북한으로 북송되었다. 성경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과정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사역장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조사와 처벌을 받아야 했던 학생들은 신앙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고통부터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에 온 뒤에도 남은 죄책감

훗날 한국에 입국한 신소광 선생은 자신이 맡았던 학생들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자신과 함께 사역장에 들어온 일 때문에 학생들이 북한으로 끌려가 큰 고생을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무겁게 남았다.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감도 컸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상처부터 받은 사람들

신소광 선생이 가장 걱정한 것은 학생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알기도 전에 사역장과 신앙 때문에 체포와 북송을 경험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사역장에 들어온 선택을 후회하거나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품게 되었을 가능성을 염려했다. 선교의 열정만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보다,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배웠다.

신소광 선생 사역장이 남긴 교훈

신소광 선생 사역장은 북송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다시 사명을 붙들고 시작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사역자의 열정과 준비만으로는 상처 깊은 학생들을 단기간에 변화시키거나 외부의 위험에서 지킬 수 없었다.

이 사역장은 지도자가 자신의 과거를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돌아보게 된 장소이자, 사람을 모집하고 훈련하는 일에는 안전과 보호, 사후 책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짧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공동체의 기억

신소광 선생과 아홉 명의 학생들이 함께 지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말씀훈련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공동체는 체포로 무너졌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사람을 의심 대신 사랑으로 맞이했던 눈물, 다시 사명을 시작한 용기, 학생들을 향한 미안함과 책임감은 중국 1차 사역의 역사 속에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