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역장에 온 금강산댐 출신 청년
1기 사역장이 산둥성 지난시로 이사 간 후, 주광호 선생이 유기풍 선생을 데리고 왔다. 유기풍 선생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북한의 “금강산댐”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했다. 나는 처음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북한 사람들만 알아듣는 말이었다.
북한은 금강산 깊은 산골짜기에 거대한 댐을 지었다. 장비가 없는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명령에 의해 중장비 대신 10만 명의 군인들을 동원했다. 기계가 해야 할 일을 군인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어 했다. 좁고 협착한 골짜기에 10만 명의 군인들이 밀집해 살았다. 이들은 북한군 중에서도 가장 생활 형편이 열악한 공병군인들이었다.
그들은 늘 굶주렸고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낮에는 군인이었지만 밤에는 강도로 변했다. 다른 부대 병영을 찾아가 양식은 물론 입고 있는 속옷까지 벗겨갔다. 금강산 좁은 골짜기들은 밤이면 새들도 숨죽이고 날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강도들의 천국으로 변했다. 그런 곳에서 10년 동안 군사 복무를 했다는 것은, 사실 군인이라기보다 산속의 토비처럼 살았다는 말에 가까웠다. 북한 사람들은 금강산댐에서 일하던 군인이라고 하면 다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