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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

3기 · 중국 1차 사역

윤병조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 정용철 선생 사역장, 3기
주요 사역 지역
연변, 서안, 화산, 한국
주요 역할
탈북민 성경훈련생, 북한 선교사로 임명, 한국 정착 후 직장인·사업가
최종 기록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형편이 정리되면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힘

3기 · 사역 기록

사역의 발자취

총명함과 순종으로 말씀을 익히고, 다시 부르심을 기다리는 북한 선교사

함경북도 새별군에서 온 청년

윤병조 선생은 북한 함경북도 새별군 출신이다. 정용철 선생이 연변으로 파송되어 학생을 모집한 뒤 데리고 온 청년으로, 당시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정용철 선생이 많이 힘들어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성품은 첫인상과 달랐다. 말수가 적었고 정용철 선생의 가르침과 지시에 순종적이었다.

스승이 자랑하던 성실한 학생

정용철 선생은 자신의 사역장 학생들을 소개할 때마다 윤병조 선생을 특별히 칭찬했다. 그만큼 병조 선생은 공동체 생활과 말씀훈련에 성실하게 참여했다.

사역장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태도와 성장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조용했지만 맡은 일을 흐트러짐 없이 해내고,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 가는 사람이었다.

1년도 되지 않아 중국어를 독학하다

윤병조 선생은 매우 총명했다. 중국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뿐 아니라 중국어 책도 큰 어려움 없이 읽었다.

중국어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묻자 중국에 온 뒤 소학교 교재부터 고등학교 교재까지 혼자 공부했다고 했다.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중국어를 독학해 자유롭게 구사하고 책까지 읽게 된 것이었다.

절도와 치밀함이 몸에 밴 사람

병조 선생은 나이만 보아서는 군 복무를 마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일상의 작은 행동까지 군인처럼 절도 있고 치밀했다. 생활 태도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이러한 성품은 강도 높은 성경통독과 말씀 암송, 공동체 훈련을 감당하는 데 큰 장점이 되었다. 잘 훈련하면 귀한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말씀 암송에서 드러난 총명함

윤병조 선생은 성경통독에서도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말씀을 천 절까지 암송할 만큼 집중력과 기억력이 뛰어났다.

단지 머리가 좋은 것에 머물지 않고 정용철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꾸준히 성경을 읽고 암송했다. 지식과 생활 태도를 함께 갖춘 훈련생으로 성장해 갔다.

하나님의 사랑을 빠르게 받아들이다

일반적으로 총명하고 논리적인 사람들은 신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윤병조 선생은 신앙의 의미도 비교적 빠르게 이해했다.

말씀을 배우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사람을 통해 전해진 사랑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던 소록도 북성교회 성도들에게 감사와 신앙의 결심을 담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성경 15독과 말씀 200절

윤병조 선생은 사역장에 온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이미 성경을 15번 통독하고 말씀 200절을 암송했다고 편지에 기록했다.

아직 성경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고백하면서도, 더 열심히 배워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으로 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성경 백 독과 말씀 천 절을 완수하다

윤병조 선생은 정용철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성경을 백 번 이상 읽고 말씀을 천 절 이상 암송했다. 공동체 생활과 선교사 훈련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끝까지 마쳤다.

빠른 이해력과 기억력뿐 아니라 꾸준함과 순종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사역장에서 가장 기대받는 젊은 일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표정훈 목사님의 영성 강의

표정훈 목사님이 사역장을 방문해 영성 강의를 했을 때 병조 선생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다른 3기생 북한 선생들과 함께 표정훈 목사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시간은 성경 지식뿐 아니라 주의 종으로서 갖추어야 할 영성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화산에서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다

윤병조 선생은 3기생 북한 선생들과 함께 화산에 올라가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북한에서 하나님과 복음을 알지 못했던 청년이 성경 백 독과 말씀 천 절의 훈련을 마치고, 고향과 동포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으로 세워진 순간이었다.

서안 체포와 북한 북송

서안의 사역장들이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될 때 윤병조 선생도 함께 붙잡혔다. 그는 다른 북한 형제들과 함께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후 다시 중국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해 사역자들을 찾아왔다. 중국에서 재회한 뒤에는 한국으로 인도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다시 드러난 학업 능력

한국에 온 윤병조 선생은 한양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중국에서 짧은 기간 안에 중국어를 익혔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였다.

입국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토익과 토플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그 성적으로 서울의 외국계 회사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하고 입사했다.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고백

한국에서 열방빛교회가 개척된 뒤 윤병조 선생은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그는 한국에서 공부와 직장 등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자주 말했다. 중국 사역장에서 성경을 배우던 때가 가장 행복했으며, 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주의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다시 부르심을 기다리는 사업가

윤병조 선생은 회사를 나온 뒤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장 개업예배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형편이 정리되면 반드시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으며, 그 일을 위해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실 것이라는 기대와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편지

소록도 북성교회에 보낸 편지

아래 편지는 윤병조 선생이 정용철 선생 사역장에서 성경훈련을 받던 중 소록도 북성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글이다. 편지의 표현과 문장 흐름은 작성 당시의 형태를 살려 수록하였다.

소록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을 비롯한 전도사님 집사님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구세주로 아버지로 모시고 항상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에 참여해 주시는 소록도 북성교회 전체 성도님들 주 안에서 모두 평강하시라고 믿습니다.

저는 함경북도 새별군에서 하나님 사역장에 와서 성경 학습을 하고 있는 윤병조입니다. 북한에 있으면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모르고 또 영생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옥으로 들어갈 뻔한 이 몸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어 또 이 사역장에 까지 불러 주시어 기쁨과 행복을 부어 주시고 비로써 인간 세상에 좋은 사랑을 우리들에게 돌려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또한 저희들에게 물질의 후원으로 동참하여 주시는 소록도 북성교회 전체 성도님들께 우리 사역장의 이름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지금 사역장으로 온 지 1달이라는 기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성경 15번 통독하고 말씀 200절을 암송하면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게 되었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처음이다 보니 아직은 성경에 대해서 이해 안 되는 점도 많지만 열심히 하여 북한에 나아가 복음 전파하는 데 앞장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자랑으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우리는 저희들에게 많은 물자의 후원으로 동참하여 주시는 소록도 북성교회 전체 성도님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 위하여 기도할 것이며 남효선 장로님을 비롯한 전체 교회인들에게 세세 무궁토록 번영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 있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