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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Calvin Jin

故 진칼빈

선교사 · B-2

진칼빈

본명은 진창걸, 성경의 사건들을 지도로 그려 형제들을 가르쳤고 폐결핵 말기에서 두 달의 기도 끝에 회복되어 박요한과 함께 옌볜에 파송되었다. 보위부 특무에게 유인되어 북송된 뒤 회령에서 공개 처형으로 순교했다.

지역
중국
순교 사유
북한 선교 사역 중 순교
기록 요약
1기 · 폐결핵 치유 · 공개 처형
본명
진창걸
소속 / 사역기수
중국 1차 사역 (1기)
주요 기록
폐결핵 치유, 삼도구 조선족교회 사역, 옌볜 학생 모집 중 북한 보위부 체포 및 북송, 순교자로 기록

1기 · 사역 기록

순교의 발자취

북송 전 투먼 감옥벽에 남긴 한 구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진창걸에서 진칼빈으로

진칼빈 선생의 본명은 진창걸이다. 사역장에 들어온 그의 이름을 내가 칼빈으로 바꾸어 준 후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그를 칼빈 선생이라고 불렀다. 칼빈 선생은 키가 작고 예리하고 다혈질적인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북한에서부터 폐결핵 환자였고, 북한 인민군에 있을 때 땅굴 공사장에서 설계사로 있었다. 칼빈 선생은 남한 땅굴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북한 형제들의 개인사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알아서 별로 유익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가루 공장과 작은 시골 교회에서 들은 복음

칼빈 선생이 학생을 모집하러 옌볜으로 나갔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삼도구 아주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그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칼빈 선생의 형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통솔하는 특수 외화벌이 조직의 요원으로 중국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이었고, 그 조직에서 도망쳐 나와 지린성 조직폭력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칼빈 선생은 사역장에 오기 전 옌지시 이란진 돌가루 공장에서 돌가루를 퍼내는 일을 했다. 몇 달 동안 힘든 일을 했지만 사장은 여러 핑계를 대며 품삯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밥만 먹여 줘도 괜찮다고 그냥 살았다. 이곳에서 많은 탈북자들이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나자 중국 공안들이 이들을 체포하러 왔다. 칼빈 선생은 공장을 떠나 도망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결국 그는 옌볜의 작은 시골 마을 교회들을 돌며 의지해서 살았다. 교회에서 살면서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

칼빈 선생은 사역장에 오기 전부터 예수님을 영접했고 성경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사역장에서 성경 통독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그의 열정과 노력은 정말 대단했고 순수했다.

그는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다른 형제들의 성경 공부를 도와주었고, 그날 배운 것을 복습까지 하고 나서야 잠들었다. 뒤늦게 사역에 합류한 바울 선생과 기풍 선생, 요한 선생이 성경을 몰라 힘들어하자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칼빈 선생은 공부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방법도 남달랐다. 군 복무 시절 설계를 했던 경험을 살려 성경의 모든 사건을 지도로 그려 다른 형제들에게 쉽게 설명해 주곤 했다. 칼빈 선생은 하나님을 전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놀이공원에서 나와 함께 찍은 사진. 그는 하나님을 전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말씀 통독이 가져온 변화

칼빈 선생은 다른 형제들에게 늘 자상했고 매사에 모범적이었다. 축구를 할 때에는 큰 소리를 지르며 혼자서 다 할 것처럼 뛰어다녔다. 국수와 냉면을 정말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릇으로 먹을 때, 그는 아예 세숫대야에 담아 먹고도 한 대야를 더 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복합니다, 선생님. 나는 한나절 말씀 통독하면 말씀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으로, 기쁨으로 차고 넘치는데 주체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내가 볼 때에도 변하는 내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칼빈 선생은 성경을 500독까지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이나 미국으로 가서 정식으로 신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듣는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의 설교는 힘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성경 말씀 때문에 행복해하고 변화되는 현상은 칼빈 선생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통독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정말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신했고, 내가 하고 있는 사역에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즐거운 한 때. 그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전한 복음

칼빈 선생은 시장에 반찬거리를 사러 나가서도 서툰 중국어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토요일에 축구하러 가면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기도 시간에는 울면서 자기 가족들과 형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금식도 자주 했다. 그의 형이 중국 조폭에 있었지만, 훈련을 마치고 옌볜으로 올라가면 형을 꼭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형이 다듬어지면 자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칼빈 선생의 누나는 북한에 있었고 무당이었다. 그는 누나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했다. “이 시간도 북한으로”라는 찬양을 부를 때에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통곡하기도 했다.

직선적이고 곧은 성격

칼빈 선생은 성격이 직선적이고 장대같이 곧았다. 동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꾸중했다. 이 때문에 무디 선생과 자주 부딪혔다.

무디 선생이 심술을 부리고 담배를 피울 때면 칼빈 선생이 야단을 했고, 그러면서 자주 다투었다. 그러나 그 곧은 성품은 사역장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려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종윤이를 향한 애정과 열차 도시락

칼빈 선생은 사역장에 한동안 함께 지내다 간 김규성 전도사님의 아들 종윤이를 특별히 좋아했다. 종윤이가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린에서 지난으로 이사 올 때 나는 북한 선생들에게 열차로 3박 4일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 선생은 이틀간 식사는 집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한국식 생활 방식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열차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것이 조금 불편할 것 같았지만, 그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칼빈 선생은 그 많은 식사 준비를 혼자서 다 해냈다. 덕분에 우리는 열차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갈 수 있었다. 너무 좋았고 돈도 많이 절약되었다. 그 후부터 열차를 탈 때에는 자주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칼빈형제가 종윤이에게 쓴 편지

소림사에서 품은 결심

1기생 선생들과 함께 중국의 소림사로 여행을 갔을 때, 칼빈 선생은 사방에 널려 있는 불교의 우상들을 보고 많이 속상해했다. 자신이 말씀 안에서 잘 다듬어져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모습은 항상 당당했다.

소림사 앞에서 찍은 사진

폐결핵과 사역장의 위기

칼빈 선생은 주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북한에서부터 폐병을 앓아 칼빈 선생을 위해 나는 한국에서 계속 약을 가져다가 먹였다. 고기를 잘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고기도 자주 해서 먹였다. 그러나 그의 폐병은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북한 선교사로 임명받고 북한 선생들은 파송 준비로 10일 작정 금식기도를 했다. 칼빈 선생도 금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금식 7일 만에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피를 사발로 토해 냈다. 온 아파트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조선족 전관화 선생이 자기 신분증으로 칼빈 선생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폐병 말기라고 했다. 폐의 상당 부분이 이미 결핵균에 먹혀 없어진 상태라고 했다. 의사는 왜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격리하거나 입원시키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다.

칼빈 선생은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입원할 수 없었다. 폐병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었다. 함께 살던 북한 선생들은 불안해했고, 이제는 더 이상 길이 없으니 당장 짐을 싸서 떠나겠다고 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두 달의 기도와 기적적인 치유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주님께 매달렸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역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눈물로 기도하면서 소록도 북성교회에도 전화해서 기도 부탁을 드렸다.

기도하는 중 주님께서 칼빈 선생의 폐병 치유를 위해 기도 시간을 연장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나는 북한 선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폐병 때문에 흩어져야 한다면 우리가 이때까지 공부한 것이 헛수고일 거예요.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그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기도합시다. 폐병 하나 못 고친다면 말이 되겠어요? 기도하면 반드시 고쳐 주실 겁니다.”

하루 2시간씩 하던 기도 시간을 3시간으로 연장했다. 북한 선생들은 마음으로는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해 주었지만,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칼빈 선생은 자기 때문에 닥친 사역장의 위기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칼빈 선생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 지 두 달 후, 그의 폐병은 기적적으로 나았다. 우리는 두 달 동안 칼빈 선생을 위해 돼지 두 마리와 염소 다섯 마리를 먹였다. 그렇게 계속 먹이면서 기도하니 칼빈 선생은 몸무게가 20kg이나 늘었고 폐병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삼도구 조선족교회 사역과 학생 모집

파송될 때 칼빈 선생은 박요한 선생과 함께 한 팀이 되어 학생을 모집하러 옌볜으로 갔다. 두 선생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삼도구 조선족교회로 갔고, 그곳에서 조선족 사역을 시작했다.

삼도구 조선족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두 선생은 마음이 아팠다. 예배를 인도할 사람이 없어 집사님들이 돌아가면서 찬송 몇 곡을 부르고, 간증을 한두 마디 하고, 성경을 한 번 읽는 식으로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다.

칼빈 선생이 설교를 하기 시작하자 성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칼빈 선생과 요한 선생이 알기 쉽게 풀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밤에 두 선생이 은거하고 있는 집에까지 찾아와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내가 두 선생을 찾아가 재촉을 해서야 두 선생은 북한 탈북자 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몇 명의 학생들을 모집했고, 마지막 두 명의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갔다. 그 후 두 선생에 대한 소식이 끊어졌다.

보위부 체포와 순교의 소식

칼빈 선생과 요한 선생으로부터 소식이 끊어진 뒤, 나는 백방으로 두 선생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혹시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지 않았나 해서 공안 쪽으로 찾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칼빈 선생의 형을 통해 두 선생에 대한 정확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두 선생은 윤길이라는 보위부 특무를 만났다. 그는 두 선생에게 룽징시 개산툰에 가면 성경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세 명의 형제들이 살고 있다고 말하며 유인했다. 개산툰은 북한과 인접해 있는 두만강 변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두 선생은 윤길 형제를 따라갔다가 현장에서 바로 보위부 특무들에게 체포되었고, 투먼 변방대를 거쳐 북한으로 끌려갔다. 칼빈 선생의 형은 자기가 아는 인맥을 통해 동생을 빼내겠다고 북한으로 나갔지만 그도 다시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훗날 들려온 소식은 북한으로 간 칼빈 선생의 형도 보위부에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역장에 3기 학생으로 들어왔던 주명 형제가 북한으로 체포되어 갔다가 돌아오면서 투먼 변방 구류소 벽에 새겨진 글귀를 보았다고 전해 주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칼빈, 요한.”

회령 지방의 한 탈북자 아주머니는 칼빈 선생과 요한 선생이 잡혀간 그 시기에 회령 지방에 포고문이 나붙고 두 명의 청년이 기독교 사건으로 공개 처형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 아주머니가 보았다는 두 청년에 대해 자세히 물으니 모든 면에서 진칼빈 선생과 박요한 선생이었다.

순교의 피로 남은 사람

고통스러웠다. 심장이 아팠다. 왜 저들은 잡혀가야 하는가. 주님은 왜 저들을 보호하지 않으셨는가.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아픔으로 내 마음을 내려눌렀다.

그때 주님은 내게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초대교회 때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의 피를 받으시고 복음을 이방에까지 힘 있게 확산시키셨다. 이 땅 북한에 복음이 전해지려면 누군가의 순교의 피가 필요하다. 두 선생은 북한 선교의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순교의 피로 제단에 바쳐졌다.

그들은 비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 은혜를 받고 나는 다시 주님에 대한 감사함을 회복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북한 선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먼저 순교할 것이니 나를 따라서 우리 모두 북조선 복음화를 위해서 순교합시다!”

육성 그대로

남긴 글 · 마지막 편지

1. 사랑하는 종윤이에게

사랑하는 종윤이에게

종윤이 안녕하세요. 멀리 중국에서 칼빈 형이 인사 전해요.

헤어진 지 한 달인데 마치 며칠밖에 안 된 것처럼 친근감이 많이 느껴져요. 마지막 날에 관화 형제하고 우리 침실에서 웃고 떠들다가 다음 날에 헤어져서 그런지 대단히 보고 싶어요. 아빠에게서 열차에서도 울더라고 한 말이 늘 마음에 걸려서 종윤이 생각이 자주 떠올라요.

형님들하고 웃고 떠들며 축구하던 때가 그립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와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 잘 하며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형들이 떠나기 전에 다시 중국에 와서 형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축구하고…

종윤아, 이번에 아빠 팀이 세 번씩이나 졌어요. (6:3, 12:6, 12:8) 후에 오면 우리 힘 합쳐 이겨서 승리하자요.

아빠 위해 기도 많이 하세요. 형님들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세요. 항상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웃어른들을 공경하며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세요. 하나님 말씀 속에서, 기도 속에서 성장한 종윤이를 기대해요.

형 종화에게 인사 전해 줘요. 건강하세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