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분사회 속에서 태어난 사람
조복화 선생은 북한의 철저한 신분사회 안에서 가장 낮은 계층으로 분류되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북한 사회에서는 출신 성분과 가족 관계가 평생의 삶을 결정했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가족이나 남조선·미국과 관련된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거나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려웠다. 조복화 선생 역시 이런 신분의 굴레 속에서 늘 의심과 감시,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Bok-hwa Jo
선교사 · B-12

북한에서 가장 낮은 신분으로 감시받으며 살다 국경을 넘었고, 탈북자를 잡으러 숨어든 보위부 요원마저 살려 주었다.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뒤 시안에서 체포되어 북송된 후 소식이 끊겼다.
3기 · 사역 기록
자신을 체포하러 온 보위부 요원을 살려 보낸 청년
조복화 선생은 북한의 철저한 신분사회 안에서 가장 낮은 계층으로 분류되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북한 사회에서는 출신 성분과 가족 관계가 평생의 삶을 결정했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가족이나 남조선·미국과 관련된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거나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려웠다. 조복화 선생 역시 이런 신분의 굴레 속에서 늘 의심과 감시,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가 중국으로 넘어온 이유는 거창한 야망이 아니라, 굶주림과 감시에서 벗어나 옥수수 한 이삭이라도 마음대로 먹어 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북한에서는 어디를 가도 통제와 감시가 따라다녔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작은 실수도 생존의 위협이 되었다. 조복화 선생은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각오해야 했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숨 쉴 수 있는 길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중국 옌볜 지역의 의란진에는 돌을 가루로 만들어 유리 원료를 만드는 작은 돌가루 공장이 있었다. 갈 곳 없는 탈북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공장 주인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이나 넉넉한 식사를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몸을 숨기고 잠시 머물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탈북자들이 그곳에서 일했다. 조복화 선생도 그 공장에서 몸을 의탁하며 살았다. 그는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크게 남을 해치거나 악하게 굴지 않는 순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북한 보위부 요원이 의란진 돌가루 공장에 숨어 들어왔다. 탈북자들의 신상과 이름을 파악해 북송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몰래 정보를 캐내다가 들키게 되었고, 탈북자들의 분노가 그에게 쏟아졌다. 조복화 선생은 북한 정권에 대한 원한이 컸지만, 죽음 직전까지 몰린 그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으로 그를 살려 주는 쪽을 택했다. 이 일은 훗날 조복화 선생의 깊은 내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장면으로 남았다.
돌가루 공장의 사건 이후 조복화 선생은 여러 사역자들과 연결되었다. 제남 사역장에서 북한 형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시기, 그는 여러 선생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삶에 대한 상처가 깊었지만, 동시에 그는 사람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거칠고 까다롭게 보였지만, 그 안에는 탈북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픔과 연민이 있었다.
조복화 선생은 사역장에 들어온 뒤 여러 팀장과 선생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선생들은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기도 했고,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기도 했다. 처음 신앙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선배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질 때 조복화 선생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이후 선생들의 잘못을 보면 즉석에서 비판하고 꾸짖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 자신이 믿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조복화 선생은 통독과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지도자가 된 사람이라면 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선생이 느슨하거나 학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느끼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그대로 지적했다. 그의 태도는 때때로 갈등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사역과 신앙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성막 강의가 진행될 때 조복화 선생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성경을 많이 읽고 구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강의였지만, 그는 깊이 따라갔다. 강의를 맡았던 목회자는 조복화 선생이 말씀을 상당히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겉으로는 까다롭고 직선적이었지만, 말씀 앞에서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정용철 선생 사역장에서 훈련 과정을 마친 조복화 선생은 북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이름에는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화산에 올라가 북한 선교사로 세워진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도 함께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서원과 기도의 시간을 보냈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조복화 선생은 권능 선생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사역장 안에서는 나이보다 훈련 질서가 중요했다. 권능 선생은 조복화 선생의 태도를 바로잡으려 했고, 조복화 선생은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권능 선생은 그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타이르며 다시 기회를 주려고 했고, 결국 조복화 선생은 정용철 선생 사역장으로 보내져 다시 훈련을 이어가게 되었다.
조복화 선생은 말로는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라 선생님의 사모님에게 편지를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가정의 바쁜 일 속에서도 북한 선교와 제3기 통독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주는 사랑에 감사했다. 낯설고 물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이역 땅에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돌보아 주는 사모님의 수고를 ‘주님의 종이면서도 한 가정의 어머니이며 우리들의 맏누이’라고 표현했다.
서안에서 사역장 전체가 체포되었을 때 조복화 선생도 함께 붙잡혔다. 많은 형제들이 국경 도시 도문 감옥으로 호송되었고, 그곳에서 북한으로 보내질 날을 기다려야 했다. 희망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고백들이 이어졌다. 조복화 선생 역시 그 흐름 안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보아야 했다.
도문 감옥에서 북송된 형제들은 이후 북한 보위부의 가혹한 심문과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조복화 선생도 북한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그는 온갖 의심과 멸시 속에서 살던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북한 복음화를 위해 생명을 바치겠다는 이름과 사명을 품고 걸어갔다. 언젠가 북한이 열리는 날, 그가 남긴 흔적도 다시 확인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긴다.
육성 그대로
소록도 남효선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안녕하십니까얼굴도 모르고 이름조차도 모르는 저희들을 위하여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헌금하여 보내 주신 남효선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북에 있을 때에는 우상숭배심으로 옛세월을 보내며 살던 것이 지금은 주 안에서 참 진리를 알고 배우게 되니 그 기쁨이 더 이를 데가 없습니다.저희들은 지금 낯설고 물설은 타향, 언어와 풍습도 다른 타향에서 성경을 통독한다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환난과 고난이 겹칠 때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세상살이를 하고 싶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슬픈 일이 많아지고 괴로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진심을 안고 살아갑니다.우리는 구원되었고 우리 죄도 정계 되었으니 이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저희들 속에는 항상 주님이 있으므로 더욱더 세상에 있을 때보다 편안합니다. 또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의 계속적인 기도와 기대가 있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장로님, 성도님들 하루의 쉼도 없이 저희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북조선에 두고 온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앞으로 북한에 복음의 불길, 성령의 불길이 세계적 타오르고 북한의 모든 영혼이 구원받도록 힘써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3기 통독조 조복화
라 선생님의 사모님께 전합니다.안녕하십니까가정 일의 그 바쁜 속에서도 북한 선교를 위하여 우리들의 안전과 제3기 통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위하여 항상 주님께 기도하고 또 많은 후원을 해 주고 계신 사모님과 온 가정에 감사를 드립니다.우리 3기 성경 통독조는 선배님들한테서 라 선생님의 사모님이 우리를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가정의 살림을 돌볼 힘이 많이 들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힘이 드시겠는데, 우리들한테도 관심을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주시고 날마다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낯설고 물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이역 땅에 와서 불편한 점도 많은데도 주님의 종답게 모든 것을 이겨 나가며 우리들을 위해 많은 기도해 주시는 사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우리는 지금 고생을 겪고 있지만 라 선생님과 가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 선생님도 우리 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잡수지도 못하고 뛰어다니는 걸 보고 생각하는 점이 많습니다.아이들도 우리 때문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주님의 뜻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곤 합니다.사모님 정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사모님은 주님의 종이면서도 한 가정의 어머니며 우리들의 맏누이입니다. 사모님 불편하고 힘드신 것을 참으시면서 주님께 우리를 위하여 더욱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사모님 빈말로 감사하다는 소리를 해서 미안합니다. 라 선생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정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