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바울 선생 팀을 따라온 젊은 탈북 청년
김주복 선생은 중국 1차 사역 이후 최바울 선생이 파송되어 학생으로 모집해 온 사람이다. 최바울 선생은 지린성 지린시로 가서 안투현에 있던 지인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김주복 선생을 만났다. 김주복 선생은 탈북자로 중국에 넘어온 사람이었고 특별히 갈 곳도 없었기에, 최바울 선생이 함께 공부하자고 하자 비교적 쉽게 따라왔다.
Ju-bok Kim
선교사 · B-6

한때 사역장을 떠나 방황했지만 다시 돌아와 낮은 자리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단둥 보트피플 사건으로 체포되어 신의주 보위부 감옥에 갇힌 뒤에도 같은 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스물여섯에 순교했다.
2기 · 사역 기록
옌볜 어머니께 전화로 전한 복음, 감방까지 이어져 전한 천국
김주복 선생은 중국 1차 사역 이후 최바울 선생이 파송되어 학생으로 모집해 온 사람이다. 최바울 선생은 지린성 지린시로 가서 안투현에 있던 지인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김주복 선생을 만났다. 김주복 선생은 탈북자로 중국에 넘어온 사람이었고 특별히 갈 곳도 없었기에, 최바울 선생이 함께 공부하자고 하자 비교적 쉽게 따라왔다.
최바울 선생은 팀을 이끌고 중국으로 내려와 사역을 시작했다. 김주복 선생은 통독을 잘 따라왔지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다 신앙을 거부하듯 도망쳐 깡패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했고, 십자가 그림 문신을 했다. 그는 문신을 하면 깡패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그 문신을 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최바울 선생이 팀을 이끌고 시안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최바울 선생은 돌아온 김주복 선생을 받아 주었고, 김주복 선생은 그때부터 충실하게 사역장 생활에 임했다. 주특기는 글씨를 잘 쓰는 것이었고, 그림도 잘 그렸다. 말씀 암송도 누구보다 먼저 끝냈다.
최바울 선생이 사역을 포기하고 떠날 때 김주복 선생도 지린성 지린시로 올라갔다가 다시 찾아왔다. 그때는 주복 선생과 함께 공부하던 이빌립 선생이 사역장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김주복 선생은 충분히 성장할 만큼 훈련 과정을 마치지 못했기에 이빌립 선생 사역장으로 보내져 다시 훈련을 받았다.이후 김성근 선생이 사역을 하다 포기하고 떠나자, 성실하게 훈련을 받던 김주복 선생에게 그 팀을 맡겼다. 그러나 워낙 살벌한 형제들이라 감당하기 어려웠고, 김주복 선생도 얼마 가지 못해 사역을 포기했다. 다시 최순교 선생 사역장으로 보내져 회복과 훈련을 이어가게 했다.
최순교 선생은 2기생 김주복 선생이 자기 사역장의 학생으로 온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소 난감해했다. 한 사역장에 선생이 두 명이면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었고, 사역장 형제들도 2기생 선생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김주복 선생은 먼저 자신을 낮추고 형제들에게 다가갔다. 스스로 높은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교 선생 사역장의 형제들은 모두 김주복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순교 선생 사역장 형제들과 함께 쓰촨성 청두시 인근 두장옌으로 유람을 갔을 때 김주복 선생은 아이들과 장난치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나의 막내딸과 함께 말을 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려운 삶을 지나왔지만 그에게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김주복 선생은 자기 차례가 오자 무작정 전화번호를 눌러 옌볜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화가 연결되었다. 중국 장거리 통화라 요금이 많이 나올까 염려했지만 그는 어머니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그는 ‘엄마, 이제 이거 핸드폰으로 전화합니다. 엄마도 지금 이 핸드폰으로 전화한다. 예수님 공부하는데 엄마도 교회 나가야 된다. 그러면 구원받는다. 예수님 꼭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권위 선생이 화를 내면서 핸드폰을 빼앗아 버릴 정도로 그는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다. 그러고는 ‘엄마도 전화를 받아 보아야 하지요? 부럽지?’라며 아이처럼 웃었다.
어느 날 사역장에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 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 탈북 브로커가 랴오닝성 단둥에서 배편으로 탈북자들을 집단적으로 한국으로 밀입국시키려 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도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매우 좁았다.여러 선생들과 형제들이 동요했고, 결국 최순교 선생 사역장도 이 움직임에 동참했다. 2001년 5월 단둥에서 한국으로 떠나려던 봉고차를 중국 공안이 추격했고, 출항 직전 탈북자들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단둥 보트피플’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김주복 선생도 함께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
단둥 보트피플 팀은 북한 신의주 보위부로 끌려갔다. 북한 보위부는 이미 이들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고, 한국 언론과 뉴스를 통해서도 이 사건이 알려져 있었다. 주복 선생은 이전에 탈북해 신분을 숨기려 했기에 모진 고문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주복 선생은 처형당했다.훗날 신의주 보위부에서 주복 선생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그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는 보위부 감옥 안에서도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선포했고, 감방 안에 있던 탈북자들에게도 예수를 전했다. ‘두려워니까? 그러면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됩니다.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말하며, 천국과 구원에 대해 증거했다.
김주복 선생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감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그는 처형을 앞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감방의 사람들은 천국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과 태도를 통해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김주복 선생은 복음을 위한 길에서 자기 생을 마감했다. 처형당할 당시 그는 26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북한 땅과 감옥 안에서도 복음의 씨앗이 전해졌다는 증언으로 남았다.

육성 그대로
사랑하는 형제님들에게안녕하십니까하나님의 훌륭한 주의 종들로 다듬어 가고 계시는 형제 분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제 조국, 고향, 부모 형제들과 생리별하고 이국의 타향에 와서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길가의 조약돌마냥 굴러다니며 온갖 천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아닙니까? 썩고도 썩은 세상, 멸망의 음부에서 죽어 가던 우리를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 살려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훌륭한 종들로 다듬어 주시고 날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원합니다.우리 서로 기도의 대화로서 더욱더 남자답게 굳게 서서 내 나라 북한을 위한 그 길에서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전해 가는 우리를 봅시다. 어려울 때 힘이 되시고 위로가 되시며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우리의 영혼 영원히 지켜 주시는 주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 다하도록 힘써 갑시다. 천국 복음을 위한 그 길에서 더욱 담대히 남자답게 믿음에 굳게 서서 억세게 나가기를 바랍니다.1999. 9. 7 김주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