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의 어린 탈북 청년
김누가 선생의 본명은 김철이다. 북한에 있을 때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살았고, 어린 시절부터 공개 처형과 사람들이 굶어 죽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탈북 후에는 중국 깊은 산속에서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Nu-ga Kim
선교사 · B-5

스물한 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로 시안 사역장을 맡았다. 단둥 보트피플 사건으로 북송된 뒤 감옥에서 자신을 심문하던 보위부 지도원에게 복음을 전했고, 수성교화소에서 순교했다.
2기 · 사역 기록
순교 전 보위부 지도원까지 구원시킨 어린 청년 복음 전도자
김누가 선생의 본명은 김철이다. 북한에 있을 때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살았고, 어린 시절부터 공개 처형과 사람들이 굶어 죽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탈북 후에는 중국 깊은 산속에서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김권능 선생이 첫 번째 사역을 포기하고 집으로 갔다가 두 번째 팀을 데리고 왔을 때 김누가 선생도 함께 왔다. 중국 쓰촨성 청두시에서 김권능 선생이 데리고 온 북한 형제들을 만났을 때, 누가 선생은 스물한 살로 가장 어렸고 키도 제일 작았다.

사역을 시작한 후 김권능 선생은 형제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대부분은 순교자 전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따랐지만, 김누가 선생은 조금 특별하게 성경 누가복음의 ‘누가’를 자기 이름으로 해 달라고 했다. 어린 누가 선생은 이름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진지한 일인지 잘 몰라 장난처럼 대했지만, 그때부터 모두가 그를 누가라고 불러 주었다.

김권능 선생 사역장의 형제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 누가 선생을 동생처럼 사랑해 주었다. 누가 선생도 순종적이었고 성경 통독과 기도 시간에 잘 따라왔다. 물론 종종 심하게 엇나갈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역장의 훈련 속에서 성실하게 자라갔다.
전체 사역장이 금식할 때 누가 선생이 한밤중에 부엌에서 가만히 밥을 해 먹고 들어오다가 형제들에게 들켰다. 막내가 한 일이라 형제들은 웃어 넘기려 했지만, 책임자인 김권능 선생은 매우 엄하게 책망했다.
김권능 선생은 ‘우리는 북한을 복음화하기 위한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말하며 누가 선생에게 연변으로 돌아가라고까지 했다. 장만식 아바이와 정용철 선생이 들어와 자기들의 잘못이라고 빌었고, 누가 선생도 울면서 진심으로 회개했다. 결국 용서를 받았지만 사역장 전체는 처음부터 다시 금식을 시작해야 했다. 회개하고 다시 시작한 금식은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었다.
김누가 선생은 김권위 선생과 함께 파송되어 나갔다가 안광국, 박광일, 최영학, 김용만, 정성철 형제를 모집해 산시성 시안시로 돌아왔다. 나는 시안역으로 나가 누가 선생이 모집해 온 북한 형제들을 맞이했다. 며칠 동안 긴장한 채 힘겨운 기차 여행을 했기에 모두 지쳐 보였고, 먼저 식당으로 데리고 가 밥부터 먹였다.
식당에서 광일 형제는 밥을 빠르게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다 먹으면 또 드릴 테니 천천히 먹으라’고 해도 그는 상 위의 밥을 다 먹은 뒤에야 ‘제가 원래 단련대 체질이라서 그럽니다’라고 대답했다. 북한의 노동단련대에서는 밥을 최대한 빨리 먹지 않으면 힘센 사람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그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광일 형제는 사역장에 들어와서부터 피를 토했다. 1기 때 진칼빈 선생보다 더 많이 피를 토해 모두 걱정했지만,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떤 형제는 사역장에서 죽으면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걱정했다. 모두가 난감해할 때 누가 선생만은 기도하면 낫는다고 확신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한국의 소록도 북성교회 성도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드렸다.
누가 선생은 소록도 북성교회 성도들과 남효선 장로님께 편지를 보내 자신이 맡은 사역장과 박광일 형제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지난해 8월부터 권능 선생님 밑에서 주님의 말씀을 학습하고,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장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김누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스물한 살로 어리고 부족하지만 어린 솔로몬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도우실 줄 믿는다고 고백했다.
사랑에 굶주렸던 광일 형제는 누가 선생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고, 자신을 위해 드리는 기도도 받아들였다. 어린 누가 선생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그 사역장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광일 형제를 가운데 앉히고 5시간 동안 뜨겁게 찬양하며 기도했다. 그날부터 광일 형제는 더 이상 피를 토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누가 선생은 사역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최순교 선생 사역장 학생들과 2기생 선생들도 중국 화산으로 올라갔다. 화산에서 북한 선생들은 한 사람씩 설교를 했는데, 김누가 선생의 설교는 인상이 깊었다. 그는 다른 선생들처럼 구호를 부르고 주먹을 흔들지는 않았다. 담담하게 전했지만 말씀에는 깊이가 있었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목사님들도 그의 사역장에 갈 때마다 어린 선생이 맡은 사역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가 설교에 감명을 받고 여러 번 칭찬했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을 받아 주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자 탈북자들 사이에 한국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중국 단둥에서 인천까지 수십 명의 탈북자들을 배에 태워 한국으로 밀입국시키려는 계획이 세워졌고, 이 유혹의 바람이 사역장에도 불어닥쳤다. 김누가 선생도 사역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기 위해 떠났다.
2001년 5월, 단둥에서 한국으로 떠나려던 날 중국 공안이 이들이 타고 가던 봉고차를 추격했다. 총까지 쏘며 추격해 결국 모든 탈북자들이 체포되어 북한으로 보내졌다. 한국으로 구출하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단동 보트피플’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그때 누가 선생도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
북한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누가 선생은 하나님께 절규했다. ‘하나님, 왜 저를 북송시킵니까? 살려 주십시오.’ 그의 피타는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나는 너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도 버렸다’고 응답하셨다고 한다. 누가 선생은 한없이 울었고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그러면 저에게 담대함을 주십시오. 제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한 보위부 지도원이 김누가 선생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규정대로 모질게 때리고 기합을 시키며 고문했지만, 하도 어리고 착하게 생긴 청년이라 적당히 마무리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누가 선생은 중국에 들어간 과정, 성경을 배우고 가르친 일, 한국으로 탈출하려다 체포된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살기 위해 변명도 하고 거짓말도 했지만, 누가 선생은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누가 선생을 심문하던 보위부 지도원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 평양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오니 두 아들이 굶어 죽어 있었다. 그 후 그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당시 누가 선생은 스물세 살이었다. 어린 청년의 거짓 없는 진실한 고백을 들으며 보위부 지도원은 죽은 아들들을 떠올렸고, 굳어 있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선생은 이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했다.
며칠 후 보위부에서 지하교회를 급습해 성경책 두 권을 빼앗았다. 보위부 지도원은 명령대로 모두 불태운 것처럼 보고하고 한 권을 몰래 빼내 집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심문한다는 핑계로 누가 선생을 불러 물었다. 그는 점점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내에게도 ‘하나님이 있는 것 같다. 너도 한번 기도해 봐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아내도 이후 길 위에서 기도하고 도움을 경험하면서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보위부 지도원은 누가 선생을 사랑하게 되어 찰떡, 계란, 고기를 삶아 가지고 와서 심문한다는 핑계로 불러냈다. 그러나 누가 선생은 자신이 먹겠다고 받지 않았다. 그는 같은 감방 안에 배고파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위부 지도원은 큰 충격을 받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보며 울었다.
김누가 선생이 재판을 받는 날, 보위부 지도원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리고 싶어 ‘재판정에서 예수 믿었다는 말만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일반 감옥으로 가게 하고 1년만 버티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선생은 ‘나는 죽어도 괜찮습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너무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비밀재판 당일, 누가 선생은 발언 기회가 오자 마이크를 들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예수 믿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외쳤다. 결국 재판도 받지 못하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끌려 나갔고, 이 일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보되었다.
3일 후 김누가 선생은 청진에 있는 수성교화소로 끌려갔다. 수성교화소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A급 정치범 수용소로 전해졌다. 북한 보위부는 누가 선생이 그곳에서도 계속 복음을 전할 것 같아 데려가는 즉시 처형시켰다고 한다. 보위부 지도원은 누가 선생이 처형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오랫동안 울었다. 이후 라디오 극동방송을 들으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갔고, 가까운 친구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김누가 선생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 그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다. 누가 선생을 통해 예수 믿게 된 보위부 지도원은 훗날 한 지하교회 교인을 감옥에서 구출해 주었고, 그 교인은 중국으로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김누가 선생이 북한 감옥에서 보위부 지도원에게 복음을 전하고 순교의 길을 걸어간 이 이야기는 그 교인을 통해 전해졌다.
육성 그대로
소록도 북성교회 성도님들과 남효선 장로님께 올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멀리 이국 타향에서 김누가 문안 인사드립니다.
장로님, 저는 지난해 8월부터 권능 선생님 밑에서 주님의 말씀을 학습하고,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장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김누가라고 합니다. 저의 본 이름은 김철이었는데 주님 안에서 이름을 고치고 누가 사도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사역장을 맡은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장로님과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아무 근심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전심전력하여 통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역장들이 확장됨에 따라 마귀와 사탄의 세력도 더욱 기승을 부리며 하나님의 사역에 걸림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맡은 사역장에 박광일 형제라고 있습니다. 심한 결핵으로 각혈까지 하면서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박광일 형제님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사역장 형제들의 이름을 적어 드립니다. 기도 많이 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21살입니다. 지금 세워진 선생님들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리고 아직 사역을 하기에는 부족한 나이지만, 어린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고 또 지혜를 주셔서 인도하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은혜를 주실 줄 믿고 기도해 나가며 이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장로님, 저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 우리 최광 선교사님과 가정을 위해서도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언젠가는 꼭 서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이만 글을 놓겠습니다.
장로님, 제가 책임진 사역장에 있는 형제분들의 이름을 밑에 적습니다.
1 안광국 2 박광일 3 최영학 4 김용만 5 정성철 6 김누가
박광일 형제를 위해 특별히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심하게 병을 앓고 있습니다. 장로님과 성도님들의 기도로 병을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줄 믿고 저희들도 많은 기도를 함께 하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10월 1일
김누가 올림
거룩한 하나님의 참된 사자이신 한국의 라 선생님.
저희들을 참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시려고 애를 써 오신 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겨레를 살리고 형제들을 살리고자 하나님의 부름 받고 온 저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하여 참다운 인생의 길을 알고, 그로 말미암아 겨레의 구원이 있음을 피부로 절감하였습니다.
시들어 가는 나의 겨레, 나의 형제들은 목마르게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 성령의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저는 떠나면서 선생님과 여기 사역장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건강과 축복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마음이 후련하고 병이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꼭 떠나려고 하는 것은 나 하나의 병마로 하여 사역장의 여러 선생님들의 성경 학습에 큰 지장을 주는 줄로 압니다.
그리하면 우리 겨레, 우리 형제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사랑의 손길, 구원의 손길, 하나님의 성령 복음이 단 하루라도 늦어지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생각 끝에 여러 선생들의 안전을 위해, 성령의 충만한 학습을 위해, 건강과 축복을 바라며 떠나려고 합니다.
앞이 보입니다. 북한에 성령의 복음이 전하여져, 찬송의 목소리 높여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믿어 주십시오. 언제나 어디에 가든 하나님의 깨끗한 보혈로 순종한 종으로 살리라는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건강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2001년 5월 14일
김철